음악 빼고 쇼만 남은 ‘쇼바이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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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15면

일러스트 강일구

가수들에게 무대는 꿈이다. 동영상 UCC 사이트에는 가수 지망생들이 자기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이 넘친다. 홍대 앞에는 공연료도 주지 않는 클럽 무대에 서고 싶어 오디션에 목숨 거는 인디 밴드들이 늘어선다. 이들은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무대와 대중을 원한다. 그것이 가수로서의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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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겠노라고 시작한 것이 MBC 프로그램 ‘쇼바이벌’이다. 의도는 좋다. 가수에게 꿈같은 무대를 제공해 침체된 가요계를 살린다는 거다. 그런데 의도만 좋은 것 같다. ‘쇼바이벌’을 보면서 신인 가수들의 절박함에 기댄 안이한 제작과 오만한 시선 때문에 씁쓸했다. 미국 FOX TV의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착안한 것은 틀림없는데, 그대로 베끼기라도 했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안타깝다.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신인의 바람은 절박하다. 그걸 소재로 내세웠다면 그 절박함에 맞는 진지함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프로는 버라이어티쇼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시시껄렁한 놀이와 퀴즈 등에 방영시간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 20명을 다 출연시킬 수 없으므로 7명까지 골라내기 위한 과정이라는데, 그런 오락과 ‘허접한’ 자막에 시간을 보내지만 않아도 20명의 목소리를 한 번씩은 들어볼 듯했다. 룰렛을 돌려 절반의 탈락자를 가리고, 사회 이영자가 더듬거리며 두드리는 실로폰을 들으며 절대음감을 가리고, 칸막이에 들어가 재수 없이 탈락자 부스에 선 사람이 탈락한다. 신인들의 억울한 눈물이 쏟아지고 이영자도 따라 우는데, 그들의 노래 한번 들어보지 못한 시청자로서는 그 눈물에 감동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아메리칸 아이돌’과 이 프로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거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세 명의 심사위원이 차세대 스타를 뽑기 위해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노래를 일일이 들으며 오디션을 치러낸다. 최선을 다한 그들이 한 명씩 탈락할 때 지켜보던 시청자로서는 그들의 눈물에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쇼바이벌’은 최종 무대에 오른 7팀 신인들의 노래조차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 라이브 반주도 없이 방송사가 준비한 녹음된 반주 테이프에 맞춰 노래를 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자신의 노래를 가지고 있는 신인들에게 굳이 기성 가수의 노래를 시켜 최고의 실력을 들어볼 기회도 주지 않는다. 방송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만 지상파에 서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한국적인 현실을 가르쳐준다는 것이 이 프로가 남겨주는 유일한 의미랄까.

지금처럼 대중음악계가 침체하게 된 원인은 대중이 음악을 돈 주고 살 만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존중감이 사라진 데에는 비주얼 위주, 10대 위주의 가수들만 출연시키고 그나마 오락프로에만 이들을 중용했던 방송의 책임도 크다. 그런데 그 위기를 돌파하겠다고 내세운 방송사의 프로에선 음악에 대한 존경심은 보이지 않고 신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입장의 우월감만 느껴진다.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식이 귀하게 클 리는 없지 않을까. 음악을 살리려면 음악을 귀히 여기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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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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