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 큰 시장 … 번듯한 선진국 만들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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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의 일정은 분(分) 단위로 짜여진다. 매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공식.비공식 일정이 10여 개씩 잡혀 있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인터뷰는 이날 오후 2시부터 1시간10분 동안 이뤄졌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행사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박 후보는 인터뷰 말미에 "30분만 하신다더니…"라며 전영기 정치부문 데스크에게 '항의성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예전보다 흰머리가 는 것 같다.

"저도 나이가 있고 정치하면서, 특히 2004년 4.15 총선 때 엄청나게 힘들었다. 하루에 한 시간 잔 적도 있다. 흰머리가 그때 부쩍 많이 는 것 같다. 지금 이 정도는 블리치 한 것 같은 느낌도 있어 염색은 안 한다. (웃음)"

-어려움이 닥치면 바닷가의 바위를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테러 당했을 때나 부모님이 흉탄에 돌아가셨을 때 등 살면서 아주 힘든 순간이 많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많이 단련이 된 것 같다. 난 위기에 강한 여자다. 지금은 웬만한 일엔 놀라지 않는다. 끄덕없이 버텨내겠다는 각오로 버티면 버텨지는 것이다. 사명이란 게 무엇보다 무섭다. 어머니들이 열 자녀를 혼자서 키워내는 것도 다 사명이고 책임이다."

-무엇에 대한 사명감인가.

"제 경우는 나라가 안정되고 잘살면 나도 희망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대선에서 선택 받아 나랏일을 맡게 되면 아이 잘 키우고, 취직 잘 되고, 집 걱정 없고, 노후 걱정 없고, 안보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게 꿈이다."

-예전에 쓴 책에서 개인의 행복론을 말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왜 권력을 잡으려 하는가.

"개인이 혼자 경치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 먹고 산다 하더라도 나라가 편치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저는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권력의 정점에서 권력을 지켜봤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면서도 권력을 지켜봤다.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 저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게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도 안다.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나라를 위해 잘 쓰겠다는 각오다."

-본인이 대통령이 안 되면 그런 나라가 안 되는 건가.

"이번 대선은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좌우하는 역사적인 대사다. 한나라당의 경우엔 두 번이나 대선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에 반드시 성공하자는 절실함이 있다. 확실히 믿을 수 있는 후보, 국가관이 확실한 후보가 나서야 한다. 저는 본선에서 여당이 어떤 수를 써도 이길 수 있고 나라를 맡으면 다시 기적을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토론회 때 전달력이 강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한 것뿐이다. 말을 할 때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20대 퍼스트 레이디 시절부터 연설하고 TV에도 나가고 외국인과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어떤 정부를 만들고 싶나. 핵심 컨셉트가 뭔가.

"정부는 정부가 할 일만 똑 부러지게 하면 된다. 교육에도 자유를 주고, 경제에도 자유를 줘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번듯하고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선진국을 만들 수 있다."

-'줄.푸.세' 용어는 누가 다듬었나.

"규제완화, 감세, 법질서 세우자는 주장을 계속 했었는데 국민에게 잘 전달되게 하려고 '줄푸세'란 말을 직접 만들었다. 요즘은 아는 분들이 많더라."

-강재섭 대표의 공정성은 믿나.

"잘 하시리라 본다. 이게 얼마나 막중한 책임인가. 당이 후보를 내는 거다."

-캠프의 최경환.곽성문 의원이 윤리위에 제소됐는데.

"최 의원은 잡지에 난 것이 사실인지 밝히라고 한 얘기였고, 곽 의원은 몇 달 전에 사석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한 얘긴데 뒤늦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그걸 공개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녹취록이 있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녹취록은 있는지, 몇 달 전 사석에서 한 얘기가 왜 공개가 됐는지 윤리위에서 다 검토할 것으로 본다."

-공정성이 의심되는 일이 자꾸 쌓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

"너무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다고 하면 우리 캠프에서 문제 제기할 것이다. 곪아 터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

-이명박 후보가 오늘 온 세상이 자신을 끌어내리려 한다고 했는데.

"맞선 볼 때 성품은 어떤지, 과거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결혼한다면 너무 무모하지 않겠나.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후보의 도덕성.정책.국가관.비전은 어떤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후보들이 할 일은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해명하면 되는 거다. 판단은 국민이 한다. 여당이 얘기했지만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이니 설명하면 되는 거지 우리 캠프가 여당과 짜고 한다는, 전혀 사실 아닌 얘기를 퍼트리는 거야말로 네거티브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 측에서 한나라당 검증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어떻게 보나.

"어차피 우리가 적당히 해도 본선에 가면 더 가혹하고 철저한 검증이 여당에 의해 이뤄질 것이다. 저는 당 대표 시절 2년3개월 동안 여권 세력한테 매일 당했다."

-박 후보와 관련해 정수장학회나 육영재단.영남대 재단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는데.

"저는 정수장학회나 영남대나 다 떠난 지 오래됐다. 새 이사회가 구성돼 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 입장도 아니다. 육영재단도 지금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증 과정에서 작고한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가 문제될 수 있다.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달라.

"그분은 목사님으로 나라가 어려울 적에 많이 도와줬다. 월남이 패망하고 우리나라도 어려운 상황일 때 구국기도회 하면서 도와줬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어렵고 힘들 때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위로해 주셨다. 저에게 고마운 분이다. (이 대목에서 박 후보는 어조를 높였다) 그분이 횡령을 했느니 사기를 했느니 하는 얘기가 있던데 실체가 없는 얘기다. 그분이 횡령이 어떻다고 하는데 실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디서 횡령을 당했다는사람도 없고 사기당한 사람도 없어 법원에서도 문제가 없는데 그런 소리 나오는 게 네거티브다.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하느냐는 말도 있는데 지어내서 마음대로 매도하고 네거티브하려면 무슨 말을 못 지어내겠나. 중요한 것은 실체다. 뜬구름 갖고 지어낸 얘기 하는 거야말로 네거티브다. 이미 예전에 다 인터뷰 한 것이다."

-이번 검증 과정을 잘 거치면 한나라당 후보가 여권 후보보다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나.

"검증을 철저히 할수록 한나라당 후보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지지자들도 안심할 것이다. 이런 소리 하면 내가 상대를 공격한다고 오해하던데 검증은 캠프에서 하는 게 아니라 당과 언론, 시민단체에서 하는 거다. 경선이 끝나면 후보자가 상대방을 껴안고 그쪽 캠프에서 일한 분들을 다 선대위에 모시고 정권교체를 위해 함께 가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후보는 경선에서 지면 상대방을 도와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효한가.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 걱정들을 하는 것 같다. 이런 경선이 여지껏 없어서 뭐든지 놀라고 불안한 것 같다. 이번에 우리가 전통을 잘 세우면 정당문화가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범여권에서 고건.정운찬.김근태씨 등이 낙마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저는 고 전 총리나 정 전 총장 같은 분들은 우리하고 더 맞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결국 여당의 지지율이 너무 낮으니까 그분들이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정리=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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