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여성들 "우리도 참정권을…"|"96년 의회는 남녀 함께"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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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4년 뒤에는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이는 지난 5일 7년만에 총선거를 치른 쿠웨이트에서 일고있는 여성운동의 구호다.
사실상 투표 1주일을 앞둔 지난 9월 29일 밤 쿠웨이트시내 제13선거구 독립계 후보의 선거구에서는 쿠웨이트 사상 최초의 사건이 있었다.
약 4백 명의 여성과 선거관련 다수 남성이 참석한 가운데 2명의 여성이 여성 참정권부여에 관한 강연을 한 것이다. 전 쿠웨이트 대 법학부장으로 현재 해양오염 방지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파트리아 아우디씨(46)와 대기업의 콘설턴트로 쿠웨이트 대 경영학 교수인 무디 품도씨(42) 가 그들.
두 사람 모두 여성 지도자들인데 여성이 공공 장소에서 남성들 앞에서 연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표가 진행된 5일에는 쿠웨이트 시내에서 약1백 명의 여성들이「1996년 의회는 남녀가 함께」라고 씌어진 플래카드를 들고 조용히 투표소 주변을 돌며 데모했다.
공무원·저널리스트·은행원 등이었는데 후보자 진영에서 나온 남성들이 흥미 깊게 바라보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쿠웨이트에서의 선거 및 피선거권은 선거법에 의해 현재 1급 시민으로 불리는 1920년 이전부터 쿠웨이트에 살아온 가계 만 21세 이상의 남자에게만 부여토록 되어있다.
따라서 선거 및 피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는 전체 국민 중 8분의 1을 넘기지 못하는 숫자다. 물론 그 속에 여성은 한 명도 없다.
여성 참정권운동의 리더인 변호사 파트리아 아우디씨는『헌법은 모든 국민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선거법은 위헌이다. 여성이 차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들 여성들은 20일 개원한 새로운 의회에 선거법개정을 위한 청원서를 보내기로 했다.
사실상 쿠웨이트 여성 중에는 사회의 이런저런 분야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있는 여성들이 많다. 관리만도 정보부·계획부·석유부 등에 국장급만도 6명이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은 보수적 종교세력에 의한 통치결과 여성이 완전히 배제되어왔다. 따라서 올 봄 여성단체는 선거에서 여성을 완전 배제시킨 현행 선거법의 위헌여부를 따지는 재판을 하려고 했으나 내부의견 불일치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고, 특히 지난 5월에 있었던 걸프전은 쿠웨이트의 여성들이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에 눈뜨고 정치에서의 오랜 소외현상을 탈피하고자 하는데 한몫을 하게 되었다. 쿠웨이트 한 신문은 선거기간 중 의회의원 출마자중 3분의 2가 여성들의 참정권 부여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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