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불 「카페의 낭만」(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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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입맛에 밀려 줄줄이 폐업
얼마전 동네 단골 카페가 문을 닫음에 따라 파리에 사는 즐거움 하나가 없어졌다.
매일 아침 이곳에 들러 따끈한 카페오레(커피에 우유를 부은 프랑스식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은 파리에 살면서 갖는 흔치 않은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옆 신문가게에서 산 잉크냄새 물씬 나는 조간신문을 펼쳐보면서 느끼는 구수한 그 맛이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별미중의 별미였다.
파리에 온 이후 특별히 집을 비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이곳에 들러 한잔의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소중한 일과중 하나로 굳어져 왔다. 단골이 되다 보니 주인 느와레씨와도 친해져 스스럼 없이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나이 예순을 바라보는 느와레씨가 한달전쯤 피자를 좋아하느냐고 느닷없이 물어왔다. 별로라고 대답했더니 유감이라면서 카페를 그만두고 피자가게로 전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무지 장사가 안된다는 설명이었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피자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종종 들러달라며 웃는 그의 표정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느와레씨의 경우처럼 요즘 프랑스에서 문을 닫는 카페들이 늘고 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60년 프랑스 전국의 카페수는 20만개였으나 90년에는 7만개로 30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수지가 안맞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프랑스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점점 미국화 하는게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카페가 프랑스 대중들의 중요한 생활공간으로 기능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 이곳에 들러 진한 커피향이 나는 에스프레소나 카페오레를 시켜놓고 정담을 주고받고 잔으로 파는 포도주나 혹은 칼바도스 한잔을 기울이며 낭만을 즐길만한 그런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카페 테라스에 앉아 길가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볼 수 있는,어디에선가 무명악사들이 연주하는 아코디온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그런 분위기도 더 이상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곳곳에 들어선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나 피자가게가 훨씬 편리하고 실속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특히 젊은세대일수록 카페는 별볼일 없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카페가 값비싼 양주를 파는 고급술집이 돼버렸지만 프랑스의 카페는 말 그대로 주로 커피나 간단한 식음료를 파는 대중들의 휴식처,삶의 애환과 정취 낭만 등이 진하게 배어있는 그런 공간이다. 프랑스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몽파르 나스나 셍제르맹의 카페를 즐겨 찾은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점점 늘어나는 프랑스의 문닫는 카페와 함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프랑스의 낭만도 이제는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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