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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반대 파업' 노조원 찬반투표 없이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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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 지부)가 19~21일로 예정됐던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저지 파업을 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11일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 집행부가 8일 조합원 투표 없이 바로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지부인 우리 노조도 이에 따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 집행부는 8일 긴급 중앙위원회를 열어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안을 상정했지만 50명 중 19명밖에 찬성하지 않자 집행부 단독으로 이같이 결정했다. 이에 대해 "현장 근로자 투표에서 파업에 반대하는 표가 더 많이 나올 것을 우려해 집행부가 무리수를 뒀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라 25~29일 공장별로 잔업시간을 포함, 18시간씩 파업을 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그러나 이런 금속노조와 현대차 노조의 결정에 대해 내부 반발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 홈페이지에는 집행부 결정에 항의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미 FTA의 최대 수혜 업종인 자동차산업이 왜 FTA 반대 파업을 하느냐는 여론도 적지 않다. 한 조합원은 '한다던 파업 찬반투표도 안 하고 파업하다니?'란 제목의 글에서 "정치파업에 대한 현장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싸늘한데 왜 현대차 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국민의 지지 0% 파업'이란 글을 올린 다른 조합원은 "우리 파업을 일반 시민 한 사람도 지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배부른 노동자들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성공할 수도 없는 파업이 몇몇 활동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와 현대차 노조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노동조합법(제41조)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에 의한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차 기획실 관계자는 "조합원의 근무여건 개선이나 임금교섭과 상관없는 정치적 파업이 분명한 데다 조합원 동의도 구하지 않은 불법 파업이기 때문에 실제 파업할 경우 관련자에 대한 형사고발은 물론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측은 이번 파업으로 9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 1월 성과급 사태와 관련된 잔업 거부 파업 때문에 1만8513대(2667억원 상당)의 생산 차질을 빚은 바 있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창립 후 94년을 제외한 20년간 335일 파업해 104만8000대(10조5000억원 상당)의 조업 차질을 빚었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산별노조 지부로서 상급 단체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현장 근로자들이 얼마나 파업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라고 토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기획홍보본부장은 "한.미 FTA 체결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자동차업계가 노조 파업으로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며 "정부도 불법 파업에 대해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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