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바꾼 「사랑의 매」(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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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8일 오후 서울 삼성동 강남병원 영안실에 차려진 서울 동작중 여교사 전영애씨(46)의 빈소에는 뜻밖의 비보를 듣고 달려온 동료교사 10여명과 3∼4명의 학생들이 전씨의 영정앞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제자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들었던 매의 대가가 목숨과 바꿔야할만큼 무거운 것이란 말입니까.』
전 교사는 지난달 7일 수업시간에 몰래 만화카드놀이를 하고 있던 학생 6명을 적발하고 이들을 불러내 야단친뒤 지시봉으로 팔에 서너차례씩 매질을 했다.
그러나 그뒤 이들중 한 학생이 매맞은 왼팔뼈에 금이 가는 상처를 입어 깁스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전 교사는 자신이 너무 심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전 교사는 9일 인천에 사는 학생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용서를 빌었으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들의 부상에 흥분한 학부모로부터 견디기 힘든 폭언을 들었을 뿐이었다.
『올해 스승의 날 교육감 표창을 받을 정도로 학생지도에 열성을 가지고 있던 모범교사인 만큼 죄책감도 있었겠지만 10여년 교직생활을 통해 일궈온 자신의 교육관이 무너지는 충격이 더욱 컸을 겁니다.』
동료 교사들은 내성적이고 말수 적던 전 교사가 자신의 문제를 동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야만 것을 못내 가슴아파했다.
『누구보다도 우리들을 이해하고 친자식 이상으로 신경써주시는 자상한 선생님이었요.』
시험기간중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빈소를 찾은 한 2학년 학생은 전 교사의 죽음이 마치 자신의 탓인것처럼 울먹였다.
「사랑의 매」가 지나쳐 학생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힌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자식에 대한 학부모의 과잉보호가 청소년을 연약하게 만들고 그들을 선도하는 교사에게까지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면 이 나라 교육의 앞날은 밝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회초리를 깎아 자식의 스승에 바치던 고사는 말 그대로 옛이야기에 불과한 것인가.<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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