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선 이라크 파병 연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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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08면

이라크 아르빌에 파병된 자이툰부대 장병들이 부대 안 제2경비소 앞에서 폭탄 테러에 대비한 경계훈련을 하고 있다. 이라크=김형수 기자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외교부 고위 당국자), “의견은 혼재돼 있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국방부 당국자) 임무종료 계획서 제출 시한 3주일을 남겨놓고 정부 당국자들은 말을 아꼈다. 사안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대선 정국을 맞아 자칫 정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청와대

미국의 입장도 저울질해 봐야 한다. 지난주 파병 연장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서를 낸 한국국방연구원(KIDA) 측도 “국책 연구소가 국익의 관점에서 보고서를 내는 것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인데도, 지금은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상황이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에는 두 기류가 흐른다. 하나는 결자해지(結者解之)론이다. 파병 시한이 사실상 정부 임기와 같은 만큼 철군해야 한다는 논리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파병을 통해 대미관계에서 성과를 낼 만큼 냈다”며 “우리 군의 인명피해 우려를 안은 채 국회 의견을 거스르고 파병 연장을 제안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파병 연장안을 놓고 당정 협의를 할 때 정부는 임기 종료와 철군 시점을 같이한다는 원칙으로 국회를 설득했었다. 다른 하나는 한ㆍ미동맹론이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 자국 군의 철군 시점을 못박지 않고 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북 자세에서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마당에 철군이 이득이 되느냐는 측면도 고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VIP(대통령)가 결정한 단계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주무 부서인 국방부와 외교부는 파병 연장을 바라는 분위기다. 자이툰부대가 의료봉사와 병원ㆍ학교 건설,기술교육 등으로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했고 이는 다국적군의 역할 모델(role model)이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라크 정부는 파병 연장을 거듭 요청하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와 이라크 정부 인사들은 건설ㆍ유정개발 등에서 한국 기업 정부를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자이툰부대의 활동으로 대중동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며 “4년간 고생한 끝에 이제 성과를 보려는 시점에서 철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다음 정권에 부담이 되는 일이면 모를까,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득이 되는 일인데, 결자해지란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3년 전 추가 파병을 결정할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며 “자이툰부대가 주둔하는 쿠르드 자치정부와 이라크 정부가 파병 연장을 원한다면 도와주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니냐”고 말했다. 쿠르드 자치정부가 확실하게 한국 기업과 정부의 재건사업 참여를 보장한다면 파병 연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지난 2일 싱가포르에서 김장수 국방부 장관에게 아프가니스탄 한국군의 파병 연장을 통한 지방재건 사업 기여를 요청했지만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테러 전에서의 지속적인 협조가 이뤄지길 바란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파병 연장을 희망했다는 전언이다. 미국의 이런 입장에는 이라크 파병 연장 문제가 대선 정국의 이슈가 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2002년 대선 당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효순ㆍ미선양 사건은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반미 감정이 고조됐다.

정부가 파병 연장 쪽으로 결론낸다면 임무 종료 계획서에는 이라크 정부의 주둔 연장 요청, 자이툰부대에 대한 현지 평가, 정세 등을 담아 평화ㆍ재건이라는 당초의 임무 완료를 위해 파병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담을 전망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말까지 국회에 파병 연장 동의안을 제출해 비준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파병 연장을 한다 해도 현재 인원 1200명 그대로 주둔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회와의 당초 약속과 이라크 파병이 한ㆍ미동맹의 결정적 변수가 아닌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다. 일각에서 부분 철군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라크 재건사업을 하는 상징적 인원을 남겨두면 보수ㆍ진보 진영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고, 이는 이라크 진출 기업의 교두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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