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 이끈 '메르켈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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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지도력이 다시 한번 국제무대에서 빛났다. 8일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막을 내린 G8(주요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다. 올해 G8 의장인 메르켈은 여러 가지 현안을 놓고 어느 때보다 각국의 이해가 얽혀 있던 상황에서 탁월한 중재력을 발휘해 미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을 누그러뜨리고 온실가스 감축 합의 등 굵직한 성과를 얻었다.

현지 언론들은 "과거 G8 의장이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모델"이라며 적극적이면서도 각국의 이익을 묘하게 조화시킨 메르켈의 중재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8일 회견에서 "이번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끈 메르켈 총리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극찬했다.

메르켈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기지 건설 계획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 완화를 위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을 막후 접촉하면서 두 정상 간의 개별 회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가장 큰 성과는 온실가스 감축 합의다. 미국은 회담 전부터 여러 채널을 통해 어떤 구체적인 목표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김을 뺐다. 이 때문에 합의 도출은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7일 오전까지만 해도 "공동성명에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어떤 내용도 포함되기 힘들다"는 게 현지 소식통들의 전언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전격적으로 합의가 발표됐다. 1990년을 기준으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상대로 미국은 구체적인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메르켈은 미국이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한 국제협약 논의에 참여한다는 약속은 받아냈다. 미국은 그동안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해 왔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약속은 '포스트 교토'에 미국을 끌어들일 만한 중요한 진전이었다. 유럽과 미국이 팽팽히 맞서던 문제에서 한발씩 물러서면서 합의안의 성명서 명시와 미국의 참여 약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적절한 접점을 찾아낸 것이다.

메르켈은 회담 전부터 온실가스 감축이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 정상들과 개별 접촉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이 같은 적극적이고 부지런한 그의 행보가 미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이 됐다는 분석이다. 메르켈 총리는 중국.인도를 포함한 신흥 개발국들의 참여를 정례화하는 합의도 이끌어 냈다.

한편 G8 정상들은 이번 회담에서 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말라리아.결핵 등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기금 600억 달러 지원에도 합의했다. 8일 발표된 공동 성명에서 정상들은 또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엄격히 자제해 줄 것과 모든 핵무기 및 현재의 핵프로그램을 '완전하고도 입증 가능하며 번복 불가능한 방식으로'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하일리겐담(독일)=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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