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마취제-보험적용 싸고 공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올들어 보사부가 개정한 마취제에 관한 의료보험 인정기준이 안전한 마취제의 사용을 막고 오히려 부작용 있는 마취제 사용을 권유하고 있어 마취전문의들로부터 반발을 사고있다.
보사부는 현재 사용을 인정한 마취제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기 때문에 진료재료로 인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마취제가 가져올 위험한 부작용을 감안한다면 안전한 마취제를 일반수가로라도 인정해 진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의대 오용석 교수(마취과)는 『마취는 수술 후 예후나 회복정도에 크게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것』이라며 『보다 안전한 마취제가 개발됐는데도 이를 근원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규정한 의료보험 급여인정기준은 납득키 어렵다』고 말했다. 마취사고는 최악의 경우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되는 등 치명적인 영향을 줄뿐 아니라 오랫동안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경우 혈압이 심하게 떨어지고 뇌세포가 크게 손상 받는 등 부작용도 매우 크다.
따라서 마취의 방법과 마취제의 종류에 따라 수술후 환자가 하루 종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거나 한달 내내 고생할 수도 있으나 반면에 어떤 경우는 수술한 당일 신문을 보고 걸어다닐 수도 있다고 오 교수는 설명한다.
지난 5, 6월 보사부가 개정한 마취제 의료보험 급여인정기준은 흡입마취제로 할로탄(Halothane)과 에쓰란(Ethrane)을 인정하고 대신 부작용이 거의 없는 포레인은 보험수가·일반수가 모두 적용되지 못하게 해 사실상 이의 사용을 막고 있다. 할로탄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급성 괴사성 간염을, 에쓰란도 간독성과 경련성 뇌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최근들어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이에 비해 포레인은 대부분 체외 배출되기 때문에 마취가 끝난 뒤 30분∼1시간이면 회복되는 등 매우 안전한 마취제로 인정되고 있다. 현행 기준은 뇌 질환이나 심장질환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게 했는데, 간이 나쁜 환자나 노인환자들의 경우 위험을 무릅쓰고 할로탄이나 에쓰란을 쓸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근육이완마취제도 빈맥·혈압상승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는 판크로늄을 주재료로 인정한 반면 이같은 부작용이 없는 베큐로늄 사용을 제한해 심혈관계질환자 등의 수술에 문제가 되고 있다.
그밖에도 정맥마취제로 소파수술과 같은 간단한 수술때 사용하면 부작용이 없는 프로포폴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흡입마취제와 병용 사용하면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펜타닐은 사용량을 비현실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한편 보사부가 이같은 규정을 하게된 이유로 들고있는 약품가격차는 단돈 몇천원에서 몇만원에 불과해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모 전문의는 예컨대 CT촬영 등의 검사가 수십만원씩 하는데, 단돈 몇만원 때문에 생명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마취제를 사용케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했다.
대한마취과학회는 이같은 규정의 개정을 건의한 의견서를 보사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또 각 병원 마취전문의들은 부작용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들 약을 사용할 수는 없다며 최악의 경우 법적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경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