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일씨 탈북서 귀환까지] 정부 실수…한때 '강제 北送'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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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용일씨는 지난 6월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했다. 전씨의 탈북을 도운 중국 현지 브로커는 곧바로 우리 관계당국과 비공개 라인을 통해 접촉했고, 국방부는 全씨가 전사자 명부에 올라있는 국군포로임을 확인해 통보해 줬다. 그러나 서울로부터의 회신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우리 당국과 브로커 사이의 연락이 끊겼다. 경북 영천에 사는 全씨의 동생 수일씨 등과 연락을 취한 브로커가 가족들이 거액의 입국 주선 대가를 마련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해 접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의 도피 과정에서 함께 탈북한 全씨의 아들은 8월초 옌지(延吉)시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 북송됐다. 이어 全씨 신병은 다른 브로커의 손에 넘어갔고 9월 24일 베이징(北京) 한국대사관 무관부와 접촉해 한국행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공식 의뢰를 받은 국방부 인사복지국은 국군포로 명단만을 살펴본 뒤 이틀 후 "그런 사람은 없다"고 답신을 보냈다.

석달 전 정보라인으로 全씨가 전사자 명단에 포함됐음을 확인해준 국방부가 정작 공식 계통을 통한 명단 확인 과정에서는 소홀히 해 그런 사람이 없다고 통보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한국 정부의 미온적 대응에 기대할 수 없었던 전용일씨는 탈북자에 대한 감시가 비교적 느슨한 저장(浙江)성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위조한 한국여권을 이용해 중국에서 만난 탈북 여성과 부부로 위장해 11월 13일 한국행을 시도하다 항저우 공항에서 체포됐다.

체포 나흘 만에 국군포로의 한국행을 도와온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의 입을 통해 全씨가 강제 북송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알려졌다.

◇전용일씨는=북한에 억류당한 국군포로로서는 34번째로 귀환한 전용일씨는 21세이던 1953년 7월 강원도 금화지구의 격전지 제암산 전투 때 중공군에 포로가 됐다. 32년 6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全씨는 농사를 짓던 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51년 12월 입대했다.

군 당국은 포로가 될 때 6사단 19연대 3대대 2중대에 속해 있던 그의 생사가 치열한 전투 와중에 확인되지 않자 휴전 직후인 53년 8월 19일 전사자로 등록했다. 당시 계급은 일병, 군번은 0676968로 올라 있다. 이 때문에 전씨의 모친은 61년부터 87년 사망 때까지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50여년간 북한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는 관계 당국의 합동신문이 끝나야 구체적으로 드러나겠지만 다른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북부지역 탄광에 배치받아 일해온 것으로 일단 알려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국군포로들을 대개 집단생활시키며 관리했다는 점에서 全씨가 다른 북한 억류 국군포로들의 인적사항이나 실태를 증언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북한에서 결혼해 낳은 아들은 全씨와 함께 탈북했으나 8월 강제북송 당했고, 북한의 부인은 92년 사망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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