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조항 있는 '선거운동 금지' 4 : 4 팽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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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최고책임자가 직접 관련된 사안인 데다 선관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노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은 물론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 전체에 미칠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9명의 선관위원 중 임재경 위원만 일본 출장 관계로 불참했다.

오전 9시5분 김호열 상임위원을 필두로 선관위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9시30분쯤 도착한 고현철 선관위원장은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논의해 봐야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중앙선관위 4층 회의실에 모인 8명의 위원은 잇따라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가 부담스러운 듯 어색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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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는 배달, 7시간 격론=선관위원들은 당초 낮 12시30분쯤 정회하고 1층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회의가 길어진 탓인지 식당에 준비돼 있던 식사를 회의실 옆 선관위원실로 배달시켜 먹었다. 결국 전체회의가 끝날 때까지 선관위원들은 회의실이 있는 4층을 한 번도 떠나지 못했다. 선관위 직원들이 회의장 문 앞을 지키면서 취재진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는 등 철통 같은 보안에 신경을 썼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원들은 2004년 3월 문제가 된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면을 영상으로 먼저 본 뒤 회의를 진행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바로 토론에 들어갔다"며 "선거법 조항별로 일일이 따져보면서 노 대통령의 발언이 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활발히 논의했다"고 전했다.

회의에선 사안별로 위원들의 찬반이 엇갈렸다. 결국 표결로 사안별 입장을 정했다. 선거법 위반 본안 심의의 첫째 쟁점인 '공무원의 중립적 의무 위반'부분은 5 대 2로 위반을 결정했다고 한다. 고 위원장은 자신을 뺀 7명의 표결 결과만으로도 찬성이 과반을 넘어 관례상 따로 의견을 표현하지 않았다.

둘째 쟁점인 '공무원 선거운동 금지 위반'대목에선 격론이 벌어졌다고 복수의 선관위원이 전했다. 표결 결과 고 위원장을 제외한 상태에서 7명의 투표 결과가 4 대 3으로 찬성이 한 표 더 많았다. 그러나 고 위원장이 막판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4 대 4 동수가 됐다. 전체회의에서 가부 동수면 위원장이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결국 이 안건은 부결됐다. 공무원 선거운동 금지 위반에 대해선 선관위가 검찰에 수사 의뢰, 고발 조치까지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처벌 규정이 없는 '공무원 중립의무'규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 위원장 덕택에 노 대통령은 더 큰 위기에 빠질 뻔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 셈이다. 한나라당이 불만을 터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관위는 발표문에서 "강연의 대상이 참평포럼 회원으로 국한됐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 대한 비판은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야당의 부정적 평가에 대한 반박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었다"고 적시했다.

셋째 쟁점인 '참평포럼의 사조직 활동 위반'부분은 처음부터 노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아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고 한다.

◆청와대 보낼 공문에 선거법 위반 명시=선관위는 이날 전자정부시스템을 이용, 노 대통령에게 '선거 중립 준수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법상 공무원의 중립의무 위반에 관해선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경고 조치를 내리지 못한다"며 "이번 공문은 '경고성 협조 요청'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고현철 선관위원장=1969년 사법시험(10회)에 합격한 고현철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2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현 정부에서 활동한 대법관 가운데 유일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이용훈 대법원장 추천으로 선관위원장에 올랐다.

고 위원장은 법조계에선 30년이 넘는 법조 생활을 통해 치밀한 업무 처리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92년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의 고문사건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2005년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 달라'는 이른바 '딸들의 반란' 판결에도 주심 대법관으로 참여해 '남자만 종중 회원'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뒤집었다.

그는 지난해 선관위원장 취임사에서 "내년 대통령선거는 조기 과열.혼탁이 예상된다"면서 "선거법 안내 등 예방 활동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되 불법 행위 발생시에는 신속하고도 단호히 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거법상 불법 행위에 대한 엄중 대처를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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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대법원 대법관
[現]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제15대)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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