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치솟는 기름값 두고 볼 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가격을 결정할 수 없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석유 소비량의 전량을 수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비난의 화살을 정부와 정유사에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매년 국정감사장에서는 정유사의 폭리 문제와 불투명한 가격결정 구조 등이 도마에 오른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석유제품 가격담합으로 정유사에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결국 정유사에 대한 소비자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정유사가 소비자가격을 즉각 올리지만 내릴 때는 쥐꼬리만큼만 내린다는 원성을 사기도 한다.

그러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 인상의 모든 책임이 정유사에 있는가. 최근 들어 언론매체에서는 우리나라 석유류 세금 비중이 외국에 비해 과다하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세금 폭탄'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실제로 소비자가격에서 차지하는 국내 휘발유와 경유의 세금 비중은 각각 60%와 50%가량이다. 최근 재경부는 경유에 대해서는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오히려 세금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재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7.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에서 프랑스(67.3%), 영국(64.7%), 독일(63.1%)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웃 일본의 경우 휘발유의 세금 비중이 41%, 호주 38%, 캐나다 31%, 그리고 미국이 14%가량이다. 그런데 명목금액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비교 대상 국가의 경제수준을 감안할 경우 우리나라의 유류 관련 세금 비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국민총소득(GNI)을 감안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이 100일 때 일본은 31, 호주는 29, 캐나다는 28, 그리고 미국은 17로 산출된다. 또한 GNI를 고려한 휘발유 세금 수준은 우리나라를 100으로 가정할 때 일본은 23, 호주는 19, 캐나다는 15, 그리고 미국은 4에 불과하다.

세금이라는 것이 결국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정부 개입의 방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시장실패가 있다고 해서 정부 개입이 당연시될 수 없으며 종종 정부 개입으로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즉 현재와 같이 유류에 부과되는 과다한 세금 비중과 탄력적이지 못한 과세정책은 소비자의 필요한 소비를 제한해 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나름대로 재정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유류 소비로부터 일정 수준의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유류세를 통해 석유소비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고유가로 인해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고통을 외면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최근 생계형 유사 석유제품의 사용이 증가하는 것도 유류에 부과되는 과도한 세금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으로 유류 가격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수출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유류세를 인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유류 관련 과세는 결국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문제다. 유류세를 내리지 못한다면 석유 소비가 제한되고 이로써 소비자 후생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유류 세금으로 각종 복지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간접적인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 반면 석유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단기적으로 유류세를 내린다면 국민의 부담은 즉각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과연 석유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어느 선택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윤원철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