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줄다리기 “산넘어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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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러,「정동공관」소유권 주장 어떻게 될까/반환 안되면 국제재판소 제소 러시아/사유지 많아 환수엄두도 못내 한국
러시아가 제정러시아 공관이 있던 서울 정동 15번지의 터 6천1백94.2평의 반환을 요구하고 나서 양국 정부가 지난 8월부터 은밀한 협상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미 한소수교 과정에서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부지반환 문제는 소련의 해체과정에서 잠시 묻혀있다가 파노프대사의 부임과 함께 다시 제기된 것이다.
정부는 이미 중국에 명동 전대만대사관,베트남에는 구월남대사관을 모두 넘겨준 상태여서 러시아측은 이같은 전제를 들어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며,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측은 제정러시아정부가 1885년 고종으로부터 8백25평을 하사받고,이듬해 부근토지를 사들여 공관을 조성했으나,하사받은 땅과 일부 근거가 없는 땅을 제외한 6천1백94.2평은 제정러시아가 매입한 계약문서도 있으므로 권리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측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제정러시아의 정통성을 계승한 러시아정부에 반환해야 한다며 반환이 안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흘리고 있다.
러시아측은 또 일제때의 토지조사자료,1948년 9월11일 재정재산에 관한 한미협정 등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측의 강경한 입장에 따라 한국정부도 관계부처 회의를 거쳐 협상을 시작했으나 이미 상당부분이 사유화돼 있고,미국대사관저가 바로 붙어 있는 등 선뜻 내놓기 어려운 처지다.
이 땅은 일제때 토지대장에 러시아 소유로 돼있는 것을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해왔다. 러시아측은 이 「토지대장」도 소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고있다. 또 49년까지 러시아인 부부가 남아 계속 관리해 왔다는 점도 제시하고 있다.
6·25 이후에는 피난민들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이 부지에 판자촌을 형성했고,서울시가 개발과정에서 69년 이들을 몰아내고 공원을 조성하는 등의 사업을 벌여 70년 국유지로 편입,서울시에 양여했다.
현재 서울시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은 근린공원 2천4백4.8평과 도로 5백16.9평이며,재무부가 사적지 보존지역 64평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70년 이후 불하한 것으로 대학생선교회(1천3백43.2평),경향신문(1천6백94.2평),학교법인 이화학원(1백71.5평) 등이 소유하고 있다. 이 땅을 환수하려 할 경우 2천억원 상당이 소요돼 정부는 이 부지의 반환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더군다나 시유지까지 포함할 경우 반환에 필요한 경비는 3천억∼4천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일단 러시아측에 당초 제정러시아가 매입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제시한 계약서를 검토하는 한편,1970년까지의 소유권 변동에 영향을 미칠 요소들을 면밀히 검토,반환할 수 없다는 법적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무엇보다 러시아 공관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계속 비어있었고,1904년 러일전쟁에서 진 이후 공관을 폐쇄,국내법상의 반환시효인 20년을 넘겼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내법이고 국제적인 관례는 승계한 정권에 대해 그 전정권의 재산 등은 보호해주도록 되어있다.
때문에 정부는 한소수교 당시부터 우호관계의 수립이라는 측면에서 양국이 상호 대사관 부지를 제공하는 방식의 정치적인 타협을 모색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구기동에 부지를 제공해주고 그대신 모스크바의 한국공관 마련에 협조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측은 대사관이 4대문 안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러시아 대사관저를 둘러싼 양국간의 줄다리기가 꽤 볼만하게 됐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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