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70년대 국내 오페라 무대 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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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성악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바리톤 윤치호 씨가 5일 오전 5시 별세했다. 65세. 고인은 1970년대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성악가였다. 특히 '라보엠'의 마르첼로와 '돈조바니'의 돈조바니 역은 거의 그의 독차지였다. 국립오페라단에서 함께 공연을 많이 했던 테너 신영조(64)씨는 "고인은 감성적이면서도 힘차다는 평을 동시에 들었던 목소리를 가졌다"라고 기억했다.

솔리스트로 명성을 날렸던 그였지만 아마추어 합창단 지휘에도 열정을 쏟았다. 소년소녀 합창단, 남성 합창단 등 수십개 합창단을 조련해 무대에 올렸다.

서울대 음악대학을 함께 다녔던 테너 박인수(69)씨는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을 좋아해 합창이 체질에 맞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주위 사람들은 생전의 고인을 유머러스하고 쾌활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고인은 3년째 앓았던 식도암이 악화돼 응급실에 들어가기 하루 전까지도 아마추어 성악 교실에 모습을 보였다. 딸 지윤(43)씨는 "2주 전에도 한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일반인들에게 성악을 가르쳤다"며 "팔에 링거를 꽂고 강의를 하다가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 전했다.

경희대 음대를 거쳐 명지대 사회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가르치는 데 열의를 보였다. 1995년에는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대원군 역으로 많은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가족들은 "음악이 있는 무대라면 어디라도 서겠다는 신념을 가지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섰던 무대는 1999년 아들 형(39)씨와의 음악회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바리톤의 길을 걷는 윤형씨는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한 후 2002년 플라시도 도밍고의 도밍고오페라단에 합격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민자씨와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 발인은 7일 오전 9시. 2072-2035.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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