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X파일' 진실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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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 파일 소동→경선 룰 충돌→한반도 대운하 공방→이명박 재산 8000억설 논란→ ?

박근혜 전 대표 측의 곽성문 의원이 5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재산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자 한나라당 내에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전 시장에 비해 지지율이 뒤지는 박 전 대표 측이 6월에 대대적인 역전 승부수를 띄울 것이란 얘기가 진작부터 나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불거진 이 전 시장 재산 문제가 면밀하게 준비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곽 의원이 이 얘기를 꺼낸 것은 두 달 전인 4월 10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 전 대표 측 의원들은 인터넷 매체 기자 10여 명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곽 의원은 "현 정부 이전의 (김대중) 정부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쓰려고 이명박 X파일을 만들었는데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며 "범여권에서 최근 이를 입수해 이 전 시장이 본선에 나오면 써먹으려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X파일에는 10건 내외가 있다는데 외환 도피도 있고, 성 접대와 관련한 탤런트 이름도 두어 명 나온다더라"고 했다. 당시 곽 의원의 얘기를 들었던 한 기자는 "시중의 뜬소문 수준이어서 참석자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발언이 돌고 돌아 최근 이 전 시장 측 핵심 인사인 정두언 의원의 귀에 들어갔다.

박 전 대표 측의 '네거티브' 움직임에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작정한 정 의원은 3일 당사에서 "대구의 K의원(곽 의원의 지역구는 대구 중-남)은 다음 선거에서 출마가 불가능한 상황이 될 정도로 비방이 너무 심하다"고 선공을 날렸다.

그러면서 4월에 있었던 곽 의원의 발언들을 비방의 근거라며 소개했다.

그러자 곽 의원은 하루 뒤인 4일 "정 의원의 발언은 이 전 시장 측의 공천 살생부 소문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5일 "X파일의 존재 근거를 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공천 살생부 논란이 커지는 과정에서 곽 의원의 '이명박 X파일' 발언이 뒤늦게 관심을 받게 된 셈이다.

경위야 어쨌든 일단 불씨가 튄 이상 이 전 시장의 재산 문제는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표 측의 유승민 의원은 "차명 재산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이자 범법인 만큼 당연히 당 검증위가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측 대변인인 진수희 의원은 "이 전 시장의 재산 문제는 이미 자체 검증을 완벽하게 끝냈고, 추호의 의혹도 남아 있지 않다"며 "곽 의원의 행태는 명백히 허위 사실 유포이며 네거티브 공세의 전형"이라고 반박했다.

정두언 의원도 이 전 시장의 땅 차명 매입 주장과 관련해 "현대그룹 재직 당시에는 성과급에 해당하는 스톡옵션이 없어 그룹으로부터 땅을 지급받기는 했으나 명의신탁 등으로 땅을 소유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양측의 충돌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자 당 검증위는 자제를 호소했다. 당 윤리위도 나섰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양측 간 공방이 심화되면 윤리위가 이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며 "캠프나 당 지도부의 제소 없이도 윤리위가 직권 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검증 공방은 이제 시작이며 앞으로 훨씬 더 거칠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시장이 당초 예정됐던 미국 방문 일정을 이날 전격 취소한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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