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소도 한국서 6개월 풀 뜯으면 '국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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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다시 전면 중단된 가운데 한우 업계는 호주와 뉴질랜드산 수입 소에 더욱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3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한우협회의 부당 행위를 적발하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우협회가 수입소 사육 농가에 사료 공급을 중단하도록 주요 사료 업체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 부당 행위라는 것이다. 한우가 전체 비육우(살코기용 사육소)의 90%에 달하는 상황에서 사료업체가 한우협회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논리다.

공정위의 조치가 알려지자, 국민들이 정작 관심을 가진 것은 한우협회가 사료업체에까지 압력을 가해야 했던 이유다. 최근 늘고 있는 수입 소가 한우에 적지 않은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살코기가 아니라 생우 형태로 수입된 소는 국내에서 6개월 이상 방목할 경우 합법적으로 국내산이 된다. 지난해 6월부터 한우협회는 수입 소에 판매되는 사료 불매 운동을 추진해왔다. 동시에 광고를 통해 모든 국내산 소가 한우는 아니라는 점을 알려왔다. 한우(韓牛.Korean Native Cattle)의 색깔은 한국 고유의 노란빛을 띤 갈색이며 수입 소와는 품종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왜 수입 소가 국내에서 6개월만 머물면 국내산이 될까? 원산지 규정의 허점 때문이다. 국제 교역이 늘면서 모든 상품에 대해서는 국적을 표기하게 돼 있다. 그러나 국제화 시대에 상품의 국적을 따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각국은 원산지에 대한 복잡한 규정들을 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대외무역법과 관세법에 관련 규정들이 있다. 상품의 경우 원산지의 기준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디서 생산이 됐느냐'와 '실질적 변형이 어디서 일어났느냐'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2개국 이상에서 생산된 부품을 조립한 가전제품이라면 그 제품의 기능을 갖추게 되는 곳이 원산지가 된다.

그러나 가축이라면 이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기준이 적용된다. 어디서 사육되었느냐를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어디서 낳았느냐를 중시할 것인가.

당연히 사육보다는 번식 기준이 까다로운 규정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사육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즉 일정한 기간 동안(소는 6개월 이상) 국내에서 사육된 가축을 국내산이라고 정해놓고 있다.

최근에는 이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 호주와 뉴질랜드산 소를 직접 들여와 국내에서 키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관세무역개발원의 안재진 책임연구원은 "수입과 국내산 쇠고기의 가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비육우 시장에서 수입 소의 비중은 급격히 증가해 1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우 사육 농가들로서는 위기 의식을 느낄 만하다. 수입과 국내산 고기의 가격차가 가장 큰 소의 경우가 두드러지지만, 다른 가축의 경우도 이런 예가 생겨나고 있다. 돼지는 국내 사육 기준이 2개월이다. 가격이 싼 나라에서 돼지를 들여와 국내에서 사육한 후 국내산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다만 닭은 이런 방식이 수지에 맞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원산지 규정을 우회하는 쇠고기 생산 방식이 확대되면서, 당신이 한우를 먹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고 알고 싶다면 이렇게 묻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이 고기 국내산이에요?"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쇠고기, 한우 맞아요?"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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