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수사 왜 주춤거리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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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마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자세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지난달 25일 기수·조교사·브로커 등 25명을 승부조작혐의로 연행할 때는 경마부정의 전모를 파헤칠 것처럼 서슬이 퍼렇더니 웬일인지 돌연 수사방침을 바꿔 소환조사마저 중단해 버렸다.
그러나 사건은 가라앉지 않고 2명의 조교사가 잇따라 자살을 하는 의외의 사태로까지 번졌다. 누가 봐도 경마승부조작은 몇몇 사람들의 우연한 범행이 아니며 크고 깊은 흑막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자살」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혀 수사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마사회관계자에 대해서는 물론 조교사와 기수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동요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소환조사마저 중단해 버렸다. 동요를 하면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의혹이 짙어도 동요만 하면 수사를 안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검찰의 마사회 내부사정이나 경마브로커들의 행태에 대한 지식이 충분할리 없다. 그렇다면 수사에 필요한 기본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마사회 관계자들과 조교사·기수들에 대해 최소한 참고인조사라도 별여야 했던게 아닌가. 그런데도 그동안 검찰은 그런 상식적인 수사절차조차 밟지 않았으니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덮으려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두 조교사의 죽음만해도 그렇다. 검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렸으나 그 동기가 석연치 않으며 자살직전의 행적에도 의문이 많다는 점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또 설사 사인자체는 자살인 것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자살까지 해야 했다는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엄청난 비리와 흑막이 도사리고 있음을 웅변하는 것이 아닌가.
정구영검찰총장은 검찰의 미지근한 수사에 대한 비난이 일자 철저한 수사를 서울지검에 지시했다. 그러나 서울지검이 이번 사건을 폭력전담부서에 배당한 것으로 보아선 과연 시중의 갖가지 의혹들을 낱낱이 풀어줄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수사의 목표를 단지 관련 폭력배나 브로커 몇몇을 더 잡는데 두어선 안된다. 이번 기회에 경마승부조작이 빚어지는 구조적 비리와 제도적 문제점까지 파헤쳐내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마사회도 대상이 돼야 한다. 마사회로서도 기왕에 시중에는 정기상납을 받았다,비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다는 등 온갖 의혹이 일고 있는 판이니 결백하다면 정당한 조사를 받아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도리어 떳떳한 일이다.
수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경마를 건전한 오락이 되게 하는데 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성역없는 전면적인 수사를 통해 비리와 그 구조부터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제도개선의 방향도 잡을 수 있다. 검찰이 또 눈치를 보는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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