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바둑계 샛별 최규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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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규병5단이 국기전에서 관운장이 오관참장하듯 강호들을 닥치는대로 무찌르고 서훈현9단과 도전자 결정 3번승부를 벌이게 되어 화제다.
또한 최5단은 올들어 각종 기전에서 30승9패(승률77%)의 좋은 전적을 거두는 등 한국 프로바둑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규병은 누구인가. 63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30세.
한국 바둑의 개척자 조남철선생의 중형인 조남석씨의 외손자이니 바로 조치훈9단의 생질 (큰 누님의 아들)이다.
그의 출중한 기재는 국민학교 2, 3학년때 이미 두각을 나타내 「어린이 국수전」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최5단은 양재호8단과 바둑의 명문 충암국민학교 동기동창이다.
국민학생 시절 양재호도 바둑신동소리를 들었지만 최규병의 벽에 막혀 바둑대회 때마다 준우승, 억울한 나머지 분애를 뿌리며 울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최5단은 75년 국민학교 6학넌때 입단, 프로경력이 벌써 17년째다.
75년은 프로기사들의 「인간선언」으로 바둑계가 큰 진통을 겪고 있던 때였다.
진정한 프로라 할 수 있는 90%의 기사들이 한국기원을 탈퇴해 대한기원을 설립, 모든 매스컴도 대한기원과 손잡고 기전을 개최하는 가운데 입단대회만 양쪽에서 열리는 실정이었다.
당시 한국기원 입단대회에 실력이 처지는 20여명이 참가한데 비해 대한기원 입단대회엔 쟁쟁한 실력의 1백수십명이 참가해 경쟁률이 비교가 되지 않았는데 어린 최규병은 떳떳하게 대한기원쪽을 택해 팔단의 기쁨을 누렸던 것.
지금까지 국민학생 때 입단한 사람은 조훈현·최규병·이창호 뿐이다.
그런 최5단이 그동안 무엇을 하다 이제야 성적을 내는가.
거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충암학원은 최규병이라는 보배를 충암중학교로 진학시키기 위해 편의상 배구선수로 등록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될줄이야.
그 무렵 충암초·중교 배구팀은 국내 최강이었고 어릴 때 키가 컸던 최규병의 외모는 과연 배구선수다워 보였다.
이런 최규병을 배구단체장을 맡고 있던 I중·고교 이사장이 우선 배정을 요구, 관철시킴으로써 엉뚱하게 I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충암학원은 되돌려줄 것을 간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후 바둑시합 참가 혜택을 빼앗긴 최규병은 바둑의 기량이 일취월장할 황금기를 학업에만 전념, 대학졸업과 병역의무까지 필한 다음 다시 바둑계로 돌아왔으니 16년전의 그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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