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심의서 긴축 되살려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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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로 넘겨질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정부가 스스로 긴축의 원칙을 앞세우면서 13%선에서 묶기로 했던 일반회계의 증가폭은 민자당과의 협의에서 14.6%로 상향조정됐고 이 수치는 최종안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부분적으로 지출억제에 고심한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규모의 팽창폭은 긴축의지의 퇴색을 부인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번의 예산편성 역시 금년도의 항목별 금액이 합리적이라는 전제하에 거기에다 일정분을 추가하는 방식의 해묵은 관행을 그대로 따랐을 뿐 그동안의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반영한 전면 개편의 손질은 한번 더 뒷날로 미뤄졌다. 그나마 새로운 시도로 보였던 자동차 및 유류관련세금의 목적세 전환은 본격적인 논의에 부쳐지지도 못한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이것은 전면개혁은 커녕 부분적인 개선의 의지조차 과연 있었던가를 의심케하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예산편성의 특징과 중점이라고 설명하는 대목들도 기껏해야 묵은 구조속에서의 미조정을 넘지 못한다. 고정적 지출의 최대한 억제를 크게 강조했지만 실제로 얻어낸 억제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불필요한 정부조직이나 기구개편까지를 포함,틀을 다시 짜는 대대적 개편을 피해가는한 경직성 경비축소라는 난제가 풀릴리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이번 예산편성과정에서 방위비 논의의 성역이 허물어지고 국방비 증가율이 처음으로 10%선 밑으로 내려간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였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복지보다 경제개발부문을 높은 우선순위에 돈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중소기업지원·농어촌 구조개선사업·사회간접자본확충·과학기술투자의 예산이 비교적 높은 증가율을 나타낸 반면 국민복지·환경·문화·예술·체육진흥의 비목들이 소폭 증액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나라살림을 특별히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가 결여된 이 예산안이 국회심의과정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뒤바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불안에 차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묘한 상태에 빠져든 민자당과 정부의 관계에다 대선을 앞둔 정당들의 정치적 계산들이 뒤엉켜 예산의 합리적 조정은 두고라도 예산심의작업의 시한내 완결이 가능할 것인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각 정당이 선심용 예산증액의 공세를 경쟁적으로 벌이고 나선다면 가뜩이나 집권말기의 무력증에 빠지기 쉬운 정부가 이를 제대로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의 이같은 걱정을 씻어줄 당사자는 정치지도자들이다. 그들은 한해의 나라살림과 국민생활을 좌우할 예산의 심의를 집권욕의 제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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