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 권영자·한국여성개발원장) 맏아들이 부모 모시는 것 당연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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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 일행이 평양에 도착하여 첫 방문지로 택해진 곳이 평양산원 (산원) 과 김정숙탁아소였다. 산원과 탁아소는 여성의 복지나 사회참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기관임을 생각할 때 북측 준비위측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알만했다.
여성을 위한 복지정책이나 남녀평등의 사회참여실현을 위한 사회지원체제가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자랑한 북한이다. 여성이 활동하는데 조금도 불편 없는 사회시설이 다 되어 있어 몸이 특별히 약하거나 문제가 있는 여성 외에는 전업주부로 있는 사람이 없다는 서울토론회에서의 북측 사람들의 자신 있는 설명을 들었던 터라 평양시내에 들어선 우리 일행의 차를 보고 환영의 박수를 치는 아파트 내의 그 많은 주부의존재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퇴근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평양의 출근 시간은 대개 오전7시, 퇴근은 오후5시 정도라고 했고 이 출퇴근 시간은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설명이었으니 낮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여성의 존재는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가내 노동자일수도 있으나 만족한 설명을 얻지 못했다.
북한 여성들은 대부분 2명 정도의 자녀를 선호한다. 아들·딸을 별로 구별하지는 않으나 맏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으로 보아 아들선호사상이 그대로 깔려있음을 느끼게 한다. 거리에 붙어있는 슬로건에는 충성과 효성을 같은 맥으로 강조하고 있고, 3대가 한집에 사는 것이 좋은 전통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 등은 북한사회가 제도적 남녀평등보장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가치관이 강함을 알 수 있다.
살림 잘하는 며느리를 얻기 원하는 시어머니,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제어하려는 아들·며느리가 그곳에도 존재한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분가를 선호한다. 가사노동도 상당부분 남녀가 분담한다고 했으나 남자 측은 일을 「같이 한다」가 아니라「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점은 우리와 같다. 여성의 가사와 사회노동에 대한 부담을 탁아소가 얼만 큼 덜어주고 있으나 2중 부담으로부터의 완전한 여성해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집안 일이야 여자가 해야지요』는 상당한 지위에 있는 중년의 안내원 누구에게서나 쉽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평양시내에는 각종 상점의 간판이 붙어있다. 미용실, 남새 (채소)· 과일상점, 가방전문 집, 옷가게 등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많이 눈에 뜨인다.
일하는 주부는 아침출근 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고 퇴근 시에 이것을 찾아가는 구매방식을 택한다고 했다. 음식점도 눈에 뜨이기는 했으나 북새통을 이루는 곳은 한곳도 보지 못했다.
우리대표단들은 북한여성의 실질적인 생활을 들여다보기 위해 소문난 밥 공장이나 농촌의 협동농장, 그리고 시내의 살림집 견학을 원했다. 일정 변경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밥 공장은 각 구역에 있고 밥·떡·국수·두부 등을 주문할 수는 있으나 번창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일용품 가게나 음식점의 증가는 밥 공장의 실효성을 낮추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남편을 세대주로 호칭하고, 가사노동의 일차적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저항이 없어 보이는 북한의 여성들에게서 여성문제에 대한 의견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될 남북여성토론회가 여성문제에 대한 폭넓은 의견교환의 장으로 활성화되어야 하리란 생각을 굳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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