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권선거 폭로」 일파만파/여야 공방속 커지는 소용돌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야 “대선전략 호재” 규탄집회로 바람몰이/여 맞대응 자제하며 파문확산 막기 부심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3·24총선 관권선거 양심선언은 여야에 희비쌍곡선을 그리면서 자치단체장선거의 여야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국민당은 단체장선거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이 호재가 발생하자 이를 최대한 정치쟁점화해 단체장선거 관철은 물론 대선에까지 활용하겠다는 자세다.
반면 민자당은 떫은 감을 씹듯 파문확산을 축소하기 위해 맞대응을 자제하면서 행정부의 기강해이에 원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민주·국민당은 총선후 처음으로 대규모 옥외규탄집회를 열고 관계자에 대한 법적고발 및 양당 공동진상조사 등 대여 정치공세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양당은 4일께 김대중대표와 정주영대표간 양당대표회담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야권공조를 강화 이를 정치쟁점으로 최대한 부각해 단체장선거 관철에 연결시킨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특히 5일 오후 대전 옥외규탄 대규모 집회에서 한 전군수가 양심선언을 군중앞에서 하고 곧바로 대전 S예식장에서 있을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뒤 대전지검의 소환에 응하게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은 대전집회때까지 한 전군수를 국회의원회관내 박계동의원실 등 민주당소속 의원실에 머무르게 하는 등 신변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민주당의 「연기군 등의 관권부정선거 진상조사대책위」(위원장 김영배)는 2일 충남도청과 대전지검·연기군청 등을 방문,증언 및 증거수집활동에 착수했다.
조사위는 이미 뚜렷한 물적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고 현지에서는 필적확인 등 사실확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민주당은 이와 함께 5일부터 전국 2백10여개 지구당별로 일제히 열리는 「지자제 관철과 정권말기 의혹사건 규탄대회」에서도 연기군 부정사건을 최대한 부각하도록 긴급 지시했다.
민주당의 이같은 총공세는 그동안 정부·여당의 단체장선거 회피가 대선에서 관권부정선거를 저지르겠다는 의도라고 몰아붙이면서도 증거가 없어 고심했는데 한 전군수의 폭로로 이를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정국주도권을 둘러싼 양김 힘겨루기에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보고 이를 대선전략에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민자당은 잇따라 터지는 악재에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을 한 전군수의 인사불만과 민주당의 대선전략이 맞아 떨어진데서 돌출한 작위적 사건이라고 규정하는 등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일절 맞대응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적 대응은 오히려 파문을 확산시킬 우려가 크다는 판단에 따라 『한 전군수가 퇴직후 단체장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는 등 공직자로서 한씨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정도다. 그래서 야당 정치공세의 근거를 흔들어 놓겠다는 고육책을 쓰고 있으나 그게 먹혀들 것이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한씨의 폭로가 총선후 5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나온데다 여당후보가 4천여표차로 낙선한 점 등은 폭로내용의 진실성을 의심케한다는 주장이다.
김영구사무총장은 『선거를 여러번 해봤지만 기관장에게 수천만원씩을 준다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김용태총무는 『지금 시점에 나온 것은 단체장선거 연내실시 주장을 밀어붙이려는 야당의 정치적 술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자당은 한씨가 수표에다 도지사가 시달한 선거지침서까지 증거물로 제시한 상태여서 파문이 쉽게 수드러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김영삼총재 주변에서는 야당에 질질 끌려가면서 수세와 변명으로 일관하기 보다 차라리 공정한 수사를 통해 사실여부를 입증해야 한다는 정면돌파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야당측이 단계적으로 대여공세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오래끌수록 인기상승국면의 김 총재 이미지에 흠집만 많이 날뿐인만큼 조기수습하자는 뜻이다. 그렇지만 정부측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야권공세의 강도와 여론의 향배에 따라 조심스럽게 대응하자는 주장이 주조임을 말할 것도 없다.<박병석·김두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