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동(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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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정을 보면서 체신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연말이면 폭주하는 우편물로 북새통을 피우고 전화기나 달아주는 별볼일 없는 부서로 알았던 체신부가 이젠 이동통신을 관장하고 한국통신을 거느리는 「21세기의 첨단부서」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때는 문교부의 일개국에 지나지 않았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홀대받는 명목상의 장관이었던 과학기술처 장관이 이젠 부총리급으로 격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질 만큼 정부 부처안에서도 권력이동이 진행중이다. 앨빈 토플러가 그의 역저 『권력이동』에서 거듭 주장했듯 후기 산업화 시대에 걸맞은 권력의 핵심은 역시 「고품질 지식」의 확보에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세계의 권력을 잇는 축이 베를린­동경­워싱턴으로 바뀌었다. 이 역시 고품질 지식,산업기술과 과학정보의 총량을 누가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자연스레 재편된 결과라 볼 수 있다. 남북한간의 팽팽했던 긴장관계에서 남쪽으로 이니셔티브가 이동되어 가는 추세도 결국은 이 고품질 지식의 확보량과 긴밀한 관계가 있지 않은가.
정부·여당 내에도 바야흐로 권력이동이 진행중이다. 민자당 총재가 바뀌면서 여당내의 권력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토플러가 권력의 핵심으로 꼽았던 완력(조직)과 돈과 지식의 총량이 이동된다는 뜻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새벽이면 상도동 총재집 문앞에는 새 총재와 면담하려는 인사들이 문전성시라 한다. 측근의 누가 실세인지를 헤아리고 누구를 통해야만 인사청탁과 로비가 먹혀들 것인지를 노리는 정상배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뒷공론도 들린다.
새시대의 권력이동이 또다시 그 옛날의 지연과 학연으로 뭉쳐지는 완력과 돈만으로는 가능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TK에서 PK로,군대동기에서 동지적 가신으로 뭉쳐지는 사조직으로는 산업화 시대를 주도할 권력의 핵심이 될 수 없다. 누가 권력이동의 주체가 될 것이냐는 누가 지식의 총량을 가진 인사들을 더 많이 확보하느냐와 같은 물음이 될 것이다.<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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