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차 쫓기던 범인이 입은 피해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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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13면

천경훈 변호사 김&장 법률사무소

미국 연방대법원이 차량 추적(car chase)과 관련해 지난달 말 흥미로운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2001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지아주의 한 도시에서 해리스라는 남자가 제한속도 시속 90㎞인 국도에서 시속 120㎞로 달린다. 경찰차가 경광등을 비추며 길 옆에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과속 이외에 다른 혐의는 없었다. 그러나 해리스는 불응하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지그재그로 운전하면서 도망갔고 경찰차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6분 뒤 뒤쫓던 경찰차가 차량 추적으로 인한 ‘무고한 시민의 위험을 종료하기 위해’ 해리스의 차 뒷범퍼를 들이받았다. 해리스의 차는 길 옆으로 굴러 떨어졌고, 전신마비의 중상을 입었다.

해리스는 불합리한 체포를 당하지 않을 헌법상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경찰관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경찰관은 자신의 행위가 적법한 공무수행이라고 항변했다. 해리스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은 배심으로 갈 것도 없이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심제는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을 때에만 적용되고,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결론에 영향이 없을 때는 배심을 거치지 않고 판사가 곧바로 판결할 수 있다.

연방대법원은 해리스의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특히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신호를 무시하고 중앙선을 넘나드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차량 추적이 벌어져 뒤쫓는 경찰관은 물론 무고한 시민들도 중대한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경찰관의 조치가 합리적인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도주 차량을 정지시켜야 할 필요성과 범퍼로 들이받을 경우 도주 차량의 피해를 비교했다.

공권력을 행사할 정당한 필요성이 있더라도 그 수단이 지나치게 위험하다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법의 ‘비례성 판단’과 유사한 판단 과정이다.

대법원은 여기서도 경찰관의 조치가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이 사건의 원인이 정지 명령을 따르지 않은 해리스에게 있다는 것이다. 무고한 시민의 피해 가능성과 스스로 잘못을 저지른 자의 피해 가능성을 비교하면 무고한 시민이 더 보호되어야 하므로, 경찰관의 조치는 적절했다는 것이다.

경찰관이 진정 일반 시민들의 안전을 우려했다면 차량 추적을 중지하면 되지 않았을까? 무리하게 쫓아가 범퍼로 들이받는 대신 추격을 포기하고 달아나게 놓아두었어도 일반 시민의 피해 가능성은 없어졌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런 입장을 따르면 범법자들은 더 속도를 내서 달아날 것이고 경찰관들은 쉽게 추격을 포기하게 될 터인데, 이는 헌법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에 엄격한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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