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23년 만에 시대 맞는 옷 입는 행정소송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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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의 잘못된 처분에 대한 국민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한 행정소송법이 23년 만에 시대 흐름에 맞게 옷을 갈아입을 모양이다. 1984년 개정 이후 행정소송이 열 배 가까이 늘어났는데도 행정기관의 '억울한' 처분이 초래한 국민의 권리 침해를 구제하는 장치는 극히 미흡했던 점을 고려할 때 무척 반가운 일이다.

특히 법무부가 어제 내놓은 개정 시안을 보면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예상되는 각종 처분을 사전에 막는 '예방적 금지 소송'과, 행정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생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가처분 제도'를 도입해 잘못된 공권력 행사로부터 국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어망을 마련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행정기관의 납득할 수 없는 거부와 부작위(不作爲.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음)에 대한 소송에서 행정기관이 패했을 경우 이행을 강제한 '의무 이행 소송' 또한 방향을 잘 잡았다. 그동안 행정청의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형' 부작위가 적지 않았던 데다 개인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행정청이 꼭 인.허가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어서 소송기간 동안 세월만 허송한 채 막대한 금융 비용으로 도산하는 경우도 적잖았던 게 사실이다. 온갖 로비와 뇌물 공여 등 비정상적, 불법 절차가 생겨나는 것이 모두 그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특히 예방적 금지 소송이 남용될 경우 행정 업무 수행의 지장이 불 보듯 뻔하다. 환경 파괴 등을 이유로 꼭 필요한 대형 국책 사업이 발목을 잡힐 수 있고, 식품위생법 위반 등으로 단속된 악의적 업주들이 영업정지 등 처분을 지연시키려고 소송을 내고 보는 사례가 다수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해 부작용이 없도록 법안을 갈고 다듬어야 한다. 모든 조항 하나하나가 사법 서비스의 수혜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법원과 행정기관, 헌법재판소 등 관련 기관 사이의 이해 대립은 여기 끼어들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