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모자원 설립 30년 맞은 '男裝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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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독신으로 살아 내 배로 낳은 자식은 없지만 모자원.학교를 운영하며 남의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도움은 많이 줬죠. 보람찬 삶이었습니다."

1953년 12월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 대지 2천평을 사들여 불우한 부녀자와 아동들을 위해 모자원을 설립한 열아홉살 처녀가 있다. 제7.9.12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남장여인(男裝女人)'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옥선(金玉仙.69)씨가 바로 그다. 金전의원은 최근 충남 서천군 장항동부교회에서 에벤에셀모자원 설립 50주년 행사를 열었다.

"53년께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과,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이 참으로 많았지요. 당시 중앙대 정치학과 졸업반이었던 저는 모자(母子)들에게 살 길을 마련해주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모자원을 설립했습니다."

모자원 설립 자금은 金전의원의 어머니가 장사를 해 번 돈으로 충당했다. 金전의원이 인건비를 아끼려고 직접 벽돌을 나르고 땅을 팠다. 처음에 여덟세대(40명)가 입주했고, 지금까지 1천3백여세대가 모자원을 거쳐갔다.

1남3녀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자식인 저를 부를 때도 절대 말을 놓지 않고 '자네'라고 부르셨어요. 학생시절에는 '우리 선비', 모자원을 운영할 때는 '원장님'이라고 불렀죠.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따로 밥상을 차려주시는 등 저를 어른으로 대접하셨어요. 제가 넓은 세상에 나가 큰 일을 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그가 신사복을 입는 등 남장 차림을 한 것은 55년 학교법인 송죽학원 산하에 중.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오빠를 대신해 아들 노릇을 하고 싶었어요. 또 나이 어린 여성이 육영사업을 하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선 신사복을 입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죠. 이후 양복이 갑옷 역할을 했죠."

그는 "교통사고로 장애를 겪는 어린이들과 소외된 노인들을 위해 노인전문병원과 장애아전문병원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글=하재식,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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