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病' 수술대 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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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독일의 경제.사회 개혁 법안인 '어젠다 2010'이 19일 연방 상.하원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5백97명의 재적의원 중 5백92명이 찬성한 이 법안은 당초 지난 10월 하원에서 가결됐지만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원에서 부결돼 그동안 양원협의회와 여야 당수간 협의를 거치는 등 진통을 겪어왔다.

'어젠다 2010'은 '독일병'으로 불리는 과도한 복지와 고비용구조의 사회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 경제를 회생시키자는 게 주 목적이다.

◇내용은=실업수당 등 각종 사회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근로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게 골자다. 또 소득세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과 국영 자산 매각도 크게 늘린다. 특히 고실업률(현재 10%)의 원인으로 지적돼온 장기실업자를 위한 복지 부문에 대대적인 메스가 가해졌다.

독일에서는 지금까지 정규 근로자로 채용돼 1년 이상 일하면 실직 후 최고 32개월간은 실업 보험(실직 전 실수입의 60~67%), 그 후로는 실업자 지원금(실직 전 실수입의 53~57%)을 받아왔다. 65세까지 지급이 원칙이다.

그러나 내년부터 실업자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을 크게 깎고 1년 이상의 장기실업자들은 본인의 근로 의사 여부와 상관없이 공공 직업 안정소가 소개하는 저임금 노동을 의무적으로 떠맡아야 한다.

또한 중세 이래 독일 사회를 떠받쳐온 장인제도(마이스터)를 부분적으로 폐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내년부터 옷수선 등 바느질 가게나 구둣방 등 53종에 이르는 가내수공업에는 마이스터 자격증이 없어도 개업할 수 있게 됐다. 도제가 십수년간의 현장실습을 거쳐 장인 자리에 오르는 마이스터 제도는 중세의 수공업자 동업 조합인 춘프트(Zunft) 이래 내려온 독일의 대표적 전통이다.

◇각계 반응=노조와 집권연정의 좌파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대 산별노조인 이게메탈(IG-Metal) 건설부문 조합장인 클라우스 비게휘젤은 "수백만명의 근로자 생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지멘스 등 독일 재계는 감세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사진설명>
지난 19일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에서 한스 아이헬 독일 재무장관(뒷줄 왼쪽)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뒷줄 오른쪽)가 하원의원들이 세금감면과 사회복지 개혁안에 대해 투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베를린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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