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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과 부처님 오신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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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 감독의 신작 '밀양'이 화제다. 세계에서 방귀 좀 뀐다는 감독들이 모이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됐다. 그는 오늘(24일) 칸의 레드 카펫을 밟는다. '밀양'도 한국에서 동시 개봉한다.

이 감독의 '변태 기질'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인간의 구원 문제를 악착같이 파고든다. 위악적(僞惡的) 느낌이 들 정도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에서 얼개를 빌려 온 '밀양'의 키워드는 용서다. 예수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지만 사실 용서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누가 조금만 밀어도 핏대부터 내는 게 우리다.

'밀양'은 용서를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한 여인(신애)이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내려와 피아노학원을 차린다. 그를 지탱해 주는 존재는 어린 아들. 그런 아들이 어느 날 유괴 살해된다. 나락에 떨어진 신애, 기독교에 귀의한다. 살인범을 용서하겠다며 교도소를 찾아간다.

죄수는 뜻밖에 평화롭다. 옥중에서 하나님을 만나 회개하고 용서까지 받았다고 한다. 또다시 무너지는 신애.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밀양'의 장면 하나. 극도의 분노로 실신한 신애가 병원에 실려 간다. 병원 입구의 커피자판기에 이런 문구가 보인다. '고장, 사용금지'. 감독은 우리의 인간관계가, 인간과 신의 관계가 고장 난 것으로 보는 듯하다. 정신이 반쯤 나간 그가 교회 부흥회에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어 대는 대목도 상징적이다. 제도화된 종교, 형식적 교리, 요란한 설교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감독은 말한다. "교회에 관련된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목사.장로.신도들도 인상이 좋은 사람을 캐스팅했다. 모두가 땅의 문제고, 인간의 문제다."

그렇다. 문제는 인간이다. 신애도 그렇다. 그가 진정 하나님을 만났다면 죄인을 용서하기에 앞서 자신을 철저히 반성했어야 했다. 사실 그는 아들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 돈도 별로 없으면서 '좋은 땅'에 투자하겠다며 '있는 척'을 했다. 일종의 자기기만이 화를 불러들였다. 돈과 땅에 매몰된 우리 대부분의 자화상이다.

신애는 또 떠나간 남편이 아직도 자기를 사랑한다며 눈앞의 현실을 부정해 왔다. 그는 자기 착각부터 회개했어야 했다. 유괴범 또한 하나님을 꺼내기 전에 신애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게 바로 인간적 차원의 용서일 게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을 실천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내 잘못을 씻어내야 한다. 자기 회한의 '메아쿨파(내 탓이요)'가 아닌 자기정화의 '메아쿨파'가 필요하다. 영화 막바지, 신애가 거울을 보며 자기 머리를 스스로 자르는 장면이 가슴을 찌른다.

마침 오늘은 불기(佛紀) 2551년 부처님 오신 날. 부처의 연기법(緣起法)에 따르면 신애는 아들의 죽음에 큰 책임이 있다. 죽이고 죽는 악연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당연, 죄수와의 악연을 끊는 것도 신애의 몫이다. 죄 없는 하나님을 원망할 이유가 없다. 그게 바로 참된 용서, 진정한 구원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중국 송나라 대혜 스님이 쓴 '서장(書狀)'의 한 대목. "아들이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진짜 슬퍼하는 것이요, 죽은 사람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것이다." 정말 쉽고도, 어려운 주문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