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 『친일불교론』〃압력〃이유 출판 포기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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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관련인사 친인척,갖은 방법으로 중단요구 일제하 불교계 인사들의 친일문제를 다룬책이 이해가 걸린 일부의 거센 반발에 부닥친 채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불교서적 전문출판사인 민족사(대표 윤재승)가『친일불교논』이란 제목으로 올 광복절에 맞춰 펴낼 계획이었던 이 책은 지난6월 및 일간지에 그 사실이 보도된뒤 친일불교인사로지목된 인물의 친인척과 문도들이 온갖회유·압력을 곁들여 작업중단을 요구해오는 바람에 출간이 사실상 포기된 상태에 있다.
민족사대표로 집필의 상당부분을 맡았던 윤씨는『일단 출간 시기를 10월말로 늦춰놓았으나 지금같은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책이 세상에 나올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며 어려움을실토하고 있다.국판 5백WHr 전후의 두툼한 부피를 계획하고 쓴 원고는 세부검토 작업만 남긴채 2천여장이 이미 완성된상태.10여년전인 80년초부터 자료수집등 준비를 해왔다는 이 책의 기획취지는「그동안 드러나지 않은·친일불교인사들의 행적을 발굴, 일제하 한국불교사를 실상그대로 복원하고 현 불교계에 반성과 교훈의 계기를 주기 위한것」이었다.
지금까지 일제하 한국불교에대한 연구는 친일문제를 의도적으로 덮어둔채 지나치게 항일만을 강조하는 파행적 경향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 일제하 한국불교를 다룬 논저가 30여편정도 발표됐으나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경우를 빼고는 친일문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연구물은 단 한편도 찾아 볼수 없다는 것이 관련학계 의지적이다.
『친일불교논』의 특징은 1930년대 말에서 해방에 이르는 소위 태평양전쟁기에 보여준 일부 거물급 친일불교인사들의 행적을 당시 월간『신불교』, 격주간『불교시보』등 불교지를 중심으로 실렸던 그들의 논설에 의거, 실증적으로 파헤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발굴된 일제하 불교인들의 친일논설 문건은90여건으로 이의 집필자 는 30명이 조금 넘고 있다.
이중 가장 많은 친일논설을 쓴 인물은 권상노·김태치·이종욱·허영호등. 영향력있는학승으로 활약했던 권상노씨(창씨명 안동상노)는「결전체제와 조선불교, 특히 관음신앙을 고취하자」등 불교인들에게 일제군국주의와 영미결전에의 참여 혹은 충성을 강요하는 20여건의 논설을 썼으며,김태치씨(김지태흡)도 역시 「국민정신과 씨창설」등 내선일체나 일제의 민족동화정책을 뒷받침하는 20여건의 논설을 발표했다.
식민지말기 종무총장을 지낸 이종욱씨(광전종욱),당시 종정사서였던 허영호씨(덕광익)도 각각10여건씩의 친일논설을 썼고, 그밖에 장도환(장본도환)·김두헌(학산헌)·박원찬(신정원찬)·김법룡(향천법룡)·금어수등의스님 및 저명불교인사들도 한두편 이상의 친일논설을 집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친일 행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낼『친일불교논』의 발간에 대해서는 후대 친인척및 문도들을 중심으로한 격렬한반대에 못지않게 이를 찬성하는 학계견해도 만만치 않다.
김지견박사(정 신문화연구원)나 김상현교수(한국교원대)같은 이는『친일문제가 한국불교계 전반의 뼈아픈 수치요, 상처임에 틀림없으나 근대불교사의 바른 정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실상 그대로 파헤쳐지고짚어져야할 부분』이라며『특히 어느 개인에 대한 정리 이해에 얽매여 사실이 덮여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족사의 윤대표는『상황이 어렵지만 출판사를 옮져서라도 가까운 시일안에 반드시 책을출간할 것이며「친일불교논」에이어 친일논설자료집과 친일인사중심의 평전도 별도의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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