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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청소」는 인류에 대한 범죄(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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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아·학살·성폭행으로 점철된 전유고령안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에 드디어 유엔이 무력개입을 결의했다.
그러나 구호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로 무력사용목적이 한정돼 있어 이 유혈의 민족·종교분쟁의 종식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벌써 1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은 주로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의한 크로아티아계와 회교도 주민 대량학살 등 잔혹행위와 그로 인한 난민 문제 때문에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전체인구 4백30만명(회교도 49%,세르비아계 33%,크로아티아계 17%)중 1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2백50만명이 난민이 되었다. 난민가운데 2백만명은 국외로 탈출했으나 50만명이 보스니아공화국내에 남아 있는데 그 대부분은 비세르비아계다. 이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계속 죽어가고 있으나 전쟁과 세르비아인의 방해로 교통로가 막혀 외부의 구호마저 어려운 형편이다.
더구나 이곳의 세르비아민병대는 구유고령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르비아공화국 중심의 신유고연방의 지원하에 이른바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작전을 펴고 있다. 회교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거나 체포하여 강제수용소에 처넣고 고문·살인·강간 등이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는데 외부 세계로서는 아직 속수무책이다. 이런 점에서 보스니아사태는 인간의 양심과 인류의 정의감,그리고 국제평화기구로서 유엔의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세계의 화약고라고 하는 발칸반도의 중심지로 1차대전의 진원지이며,2차대전때는 나치학살의 주요 무대였다. 이번 사태를 비롯하여 이 지역 불안의 배후에는 역내 세르비아계 슬라브인 전체를 묶어 하나의 국가를 세우려는 대세르비아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지금의 분쟁에는 인종적 요인외에 보스니아령내의 자민족 거주지역을 병합하려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양국의 영토적 야심과 세르비아인의 동방정교,크로아티아인의 가톨릭,집권 슬라브계의 회교 등 종교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난민구호와 잔학행위 방지활동이 강화되겠지만 이같은 인종·영토·종교적 요인을 고려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비극은 쉽게 끝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나라에 대해 갖는 가장 큰 관심은 그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비인도적인 잔학행위에 대한 것이다. 「인종청소」란 잔학행위를 무력을 써서라도 중지시키지 않으면 민족주의 열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는 최근 경향에 비추어 이런 잔학행위가 세계도처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유엔과 강대국들은 이런 반인류적인 집단범죄에 대해 보다 확고한 태도를 취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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