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만화영화 연출가 황정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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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만화영화연출가 황정렬씨(32·대원동화)는 어린이들의 혼을 쏙 빼놓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그가 1백여명의 만화가를 진두지휘해 엮어내놓은 『달려라 하니』『영심이』에 대한 어린이들의 인기가 그러하고 이미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다시 국내 어린이들을 꼼짝 못하게한 『닌자거북이』『캘리포니아 건포도』『칩멍크』등도 사실은 그의 손을 거쳐간 작품들이다.
그는 어린이의 볼거리에 매우 인색한 국내 풍토때문에 별로 여유롭지않은 만화영화계의 외로운 선두자리를 지키며 미래를 기약한채 묵묵히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좁은 시장탓에 그가 만화가들과 함께 애정을쏟아 만든 영화들의 90%는 외국으로 팔려가 그쪽 어린이애호가들의 사랑을 먼저 듬뿍 받기일쑤.
운이 좋으면 싼값에 국내에 역수입돼 비로소 우리 어린이들과 상면하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제작하는 만화영화는 1년에 60∼70여편꼴.
22분짜리 한편당 보통 9천∼1만3천장의 만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번 일이 시작되면 밑그림인 원화그리기에 30여명, 밑그림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할 동화그리기에 80여명의 만화가가 릴레이식으로 투입된다.
연출가인 그가 하는일은 작업의 내용과 순서를 기획하는 일.
그리고 이계획에 따라 만화가등 제작팀을 총지휘, 일사불란한 흐름의 만화영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만화영화는 만화에 생명을 불어넣어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야 하므로 어느분야보다 안정된 팀워크가 필요하다는 것. 그런만큼 팀을 이끄는 그의 역할은 만화제작의 실력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는 기획팀·만화가들과 함께 머리를 모아 만화영화의 줄거리인 시나리오를 선정한 후 그시나리오의 내용을 각본화하고 어린이들의 애인이 될 캐릭터를 정하는데 특히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캐릭터는 참신하면서도 때묻지 않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어야 하므로 아이디어에 늘 쫓기게 마련.
『만화영화가 매끄럽고 박진감이 있으려면 초당 24장정도의 그림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가능한 그림수를 줄이다보니 엉성하고 표현이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그는 이제 몇컷의 만화영화장면을 보면 몇장의 만화가 순식간에 어우러져 이루어낸 영상인가를 금방 눈치챌수있을 정도가 돼버렸다.
한양대 산업공학과 출신인 황씨가 만화영화일을 시작한 것은 6년전인 지난86년.
평소 방송·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친지의 소개로 적성에 맞는 이 일과 연관을 맺을수 있게 됐고, 선배밑에서 1년여 진행과 조연출실습을 했다.
그후 회사측의 배려로 일본 동경의 만화영화제작사인 동영동화에서 1년간의 연수기회를 가진것이 실력연마에 큰 도움이 됐다.
올해로 본격연출경력 4년째인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실력있는 연출가의 한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가 최근에 만든 작품은 지난달 중순부터 KBS에서 방송중인 『지구는 초록별』.
그는 어린이들의 해맑은 동심에 가까워지기위해 늘 그의 다섯 살박이 딸을 앞세워 꼬마들과의 만남을 게을리하지 않고있으며 하루 한편의 영화나 비디오관람을 매일의 식사인양 거르지 않고 있다.
그는 『우리어린이들이 어쩔수 없이 남의 나라만화를 봄으로써 자신도모르게 외국문화에 침식당하는 일은 절대로 소홀히 할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를 늘 가까이 하다보니 심각함을 자주느낍니다』고 했다.
그의 수입은 월2백만원수준. 틈틈이 외국작품을 만들어준 연출료로 편당 3백50만원을 받기도하고 10초짜리 광고물제작에 2백만원을 받는 부수입이 매우 짭짤하다.<고혜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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