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큰 뜻 관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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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여갑순에 이어 한국사격 사상 올림픽에서 두번째 금메달을 따낸 이은철(이은철·한국통신)은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두눈에 이슬이 맺혔다.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사격인생의 굴곡이 머리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홍파국교 5학년때인 11세때 어린이 사격왕에 오른 것이 인연이 돼 사격에 입문한 이은철은 일찍부터 남다른 자질을 발휘, 한국 사격을 이끌어 나갈 재목으로 손꼽혔다.
그만큼 그에 대한 기대와 질시는 여느 선수와 달랐고 엄청난 심적 부담으로 어린 나이에 남모르는 고통을 감내해 내야만 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도 이은철은 확실한 금메달 감으로 꼽혔다.
그도 그럴것이 17세때인 지난 84년 사격사상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은철은 85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따내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기량이 하루가 다르게 상승한 이는 87년 북경 아시아 선수권대회 4관왕, 88뭔헨 월드켭 은메달을 따내 세계적인 선수로 성가를 한껏 높였기에 그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주종목인 소구경 소총 3자세에서 어처구니없게도 28위라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고 자신을 비롯한 사격인들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노메달에 그치자 해외파(파)인 그에게 쏟아진 엄청난 비난과 사격에 대한 회의가 한꺼번에 겹쳐 이은철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총을 버려둔채 한때 골프에 심취하기도 했다.
미국은 80년 유학길에 나선 아버지 이윤희(이윤희·51)씨를 비롯, 이민간 가족들이 모두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이대로 물러서면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는 어머니 박인화(박인화·49)씨의 말이 그의 귓가를 때렸다.
여기에 대표팀 윤덕하(윤덕하·38)코치가 하루가 멀다하고 국제전화와 편지로 다시 사선에 설 것을 끈질기게 종용했다.
마침내 마음을 고쳐먹고 대표팀에 합류한 이은철은 90년 모스크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2년동안 절치 부심한 결과이며 주특기인 리듬사격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리듬사격이란 지난 84년 미국 유학시절 세계적인 사격지도자 래리베삼(78년 세계 선수권 4관왕)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조준과 격발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사격술. 그 중에서도 이은철은 빠른 템포의 사격을 구사한다.
이은철은 여세를 몰아 북경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 2개를 따내 완전히 명예회복에 성공하며 한국사격의 간판임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1m77cm 다소 가냘픈 몸매지만 승부정신이 남달리 강해 불리한 경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강점.
거기에다 풍부한 국제경기 경험으로 결선에 오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성을 발휘, 본선보다 더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텍사스주 루스란대학 컴퓨터 설계학과 3학년 재학중 휴학한 이은찰은 오는 12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남은 학업을 마칠 예정이다.
미국에 남아 있는 누나 선영(선영·30)은 미시간주 챔피언에 오른 사격선수이며 동생 승철(승철·22)과 지윤(지윤·22)도 골프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운동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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