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대선에 담긴 뜻/김호진(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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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모택동의 말이다.
권력은 선거로부터 나온다. 정치경제학자인 조제프 슘페터의 견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에서는 모택동의 총구론이 통용되었고 슘페터의 선거론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80년의 5·17군부 쿠데타가 단적으로 말해주듯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을 거쳐 90년대에 들어오자 사정이 바뀌었다. 제3세계 국가를 비롯,동구·소련 등 공산권에서도 민주화의 물결이 일자 모의 총구론은 적실성을 잃게 되었고 슘페터의 선거론이 시대적 당위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투표가 총알보다 더 강해진 것이다.
○문민정치로의 대전환
이러한 세계사적 조류는 한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관철되고 있다. 87년의 6월항쟁은 민중의 힘이 권위주의적인 억압정치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슘페터의 논리를 정당화 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6월 항쟁의 결과라 할 수 있는 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전히 총구의 논리가 관철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총구를 통해 권력에 접근한 노태우후보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직선제에 의해 선출된 민선 대통령 임에는 틀림없으나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권력기반은 12·12와 5·17이라는 일련의 무력적 사태를 통해 다져진 것이었으므로 13대 대통령선거는 형식적 절차상으로는 슘페터의 논리에 따랐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모의 논리가 관철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연말에 있을 14대 대통령선거는 그 성격이 13대선거는 물론 역대 대통령선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달리 말해 14대 대선은 한국정치에서 모의 논리가 거부되고 형식적 절차뿐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최초의 계기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알려진 후보자들이 그대로 출마한다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문민정치,즉 순수한 민간인 출신의 지도자에 의한 정치가 실현될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점을 14대 대선이 갖는 첫번째 역사적 의의로 부각시키고 싶다.
○다가선 양김시대 청산
14대대선의 두번째 의의는 그동안 한국정치를 주름잡아온 양김시대를 청산한다는데 있다. 한국정치에 있어 양김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시대적 상징이다. 우선 암울했던 시기에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양김의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으며,오늘날 문민정치를 실현할 수 있게 한 6·29도 상당부분은 이들의 활동을 통해 잉태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양김은 긍정적 측면을 갖는다.
그러나 양김은 어떠한 변명을 하더라도 지역주의와 파당성을 심화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영호남 대결이라는 불행한 사태는 양김의 존재 및 정치적 형태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개인적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사적인 당운영은 정당정치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13대 대선에서 야권통합을 바라는 국민여망을 무시하고 결국 갈라섬으로써 정권교체와 민주화의 진척을 좌절시킨 점도 양김이 표상하는 부정적인 정치행각들이다. 그런데 이제 여·야로 갈라선 양김은 14대 대선을 통해 마지막 승부를 겨루게 되었고 결국 누가 당선되든 양김시대는 청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양김은 이것을 시대적 당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14대 대선의 세번째 의의는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60년대 이래 30여년간 한국의 권력정치를 주도해온 지배연합이 개편된다는 점이다. 우선 김대중씨가 당선되면 권력의 모체집단이 전반적으로 이동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며,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주영씨가 당선되면 재벌을 주축으로한 지배연합이 형성되어 금권정치의 시대가 막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집권당 후보인 김영삼씨가 당선될 경우에도 TK를 주축으로 지배연합을 형성하고 있는 민자당 기반으로는 YS시대를 이끌어 나가는데 한계를 느낄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지배세력을 재편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지배연합의 재편은 한국정치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임에 틀림없다는 점에서 14대 대선은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국민 현명한 판단할때
위에서 보았듯 14대 대선은 한국정치에 있어서 과거를 청산하고 향후 우리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이 점을 감안할때 한국정치는 지금 대전환의 기로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4대대선은 이 변화를 「누가,어떻게,어느방향으로 끌고나갈 것이냐」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이른바 「중대선거」가 될 것이다.
이렇듯 중요한 14대 대선이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발전에 순기능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대선에 임하는 국민들의 판단과 선택이 현명하고 정당해야 한다. 이점과 관련,독일의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국민들에게 한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 자신의 힘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구제되지 않는다­.』<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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