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막딸이 아줌마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우리 집에 출근할 때는 머리를 예쁘게 드라이하고 하다못해 천 원짜리 귀걸이라도 꼭 찰랑거리며 들어온다. 소박하지만 아침을 정성껏 어여쁘게 시작하며 그녀가 우리 집으로 오는 게 나는 좋았다. 아줌마가 남편이 돌아가신 후에, 몸 파는 일 빼고는 다 해보았다고 엄마에게 말하는 것도 들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몸이 부서져 죽어도 좋았다고 아줌마는 말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아줌마의 아들과 딸은 어엿이 대학을 졸업해 회사에 다닌다. 그래도 아줌마는 일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는 엄마가 없는 방에서 청소기를 내려놓고는 엄마가 읽다가 침대맡에 놓아둔 책을 읽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내가 "아줌마 밥 좀 주세요" 하니까 그제서야 아줌마는 정신이 난 듯 으응, 하고 대답했는데 그 책은 내가 읽기에도 어려운 책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내가 "아줌마 책 좋아해요?" 물으니까, 아줌마는 웃었다.
"좋아해. 어린 시절에 우리 아버지가 공부만 더 시켜주었어도…."
아줌마는 맛있는 된장국을 내 앞에 놓아주더니 약간 슬픈 어조로 말을 이었다.
"책은 훌륭한 사람들이 쓰는 거잖아. 많이 배우고 그런 사람들이…. 그래서 모자라는 내가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대답하려다가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문득 "훌륭하다"라는 단어가, 아줌마가 책을 두고 하는 그 단어가, 내 가슴에 걸려왔다. 모르겠다. 그냥 엄마에게 얼핏 들은 아줌마의 일생이 그 "훌륭하다"라는 단어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밥을 찾아 먹을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었지만 아줌마는 뭐든지 살려내는 선수였다. 죽은 화분은 아줌마의 손길만 닿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살아났고, 병든 강아지도 그랬다고 했다. 언젠가는 양계장에서 일을 했는데, 부화가 되지 않아 버려진 달걀 두 개를 가져와 딸의 책상 위에 놓아두고 밤새 스탠드를 켜 주어서 부화시킨 일도 있다고 했다. 내가 정말이에요, 물었더니 아줌마는 대답했다.
"그냥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어. 그냥 두면 삶아져서 막노동꾼들의 술안주로 팔려가버렸을 텐데 혹시나 하고 따뜻하게 해주었더니 글쎄 병아리가 깨어나지 뭐니, 얼마나 신기하던지."
전기값까지도 일일이 계산해야 했을 아줌마의 가난한 일생에서 밤새 알전구를 켜두기로 결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아줌마를 두고서 내가 지당한 말만 늘어놓아 거꾸로 산 사람들을 질식시켜 버리곤 하는 '지당도사' 같은 저자들을 어떻게 더 존경할 수 있을까 말이다. 아무튼 할머니가 되지 않은 아줌마는 나와 동생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모래를 퍼와서 라면 박스에 넣었다. 그렇게 되면 훌륭한 고양이 화장실이 되는 것이었다. 고양이들은 절대 아무 데나 배설을 하지 않는다. 사람 말고 자신의 배설 자리를 그렇게 구별하는 짐승이 또 있을까, 아니 사람들도 실은 그렇게 예의를 차려 배설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커다란 바구니, 내 헌 스커트 위에서 두 마리 고양이는 설풋설풋 잠을 잤다. 나도 그 고양이들을 따라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잤다가 깨어나고 잤다가 깨어나곤 했다. 엄마가 한밤중에 들어와 고양이들을 내쫓기라도 할까봐 겁이 났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