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미관계 개선해 중국 의존 줄일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미국 UC버클리의 로버트 스칼라피노(사진) 석좌명예교수는 미수(米壽)의 나이에도 여전히 동아시아 연구에 관해선 권위자로 통한다. 지난해 7월 대포동 2호 미사일이 발사될 때도 북한에 체류하는 등 모두 다섯 차례나 방북했다. 14일 인하대(총장 홍승용) 주최 학술 행사에서 주제 발표를 위해 한국에 온 그를 만나 동아시아 지역 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전 종전 선언을 제안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시 대통령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물론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았지만요. 문제는 북한이 이에 대해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죠. 북한이 너무나 단절돼 외부에서 북한의 입장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권력 구조가 힘들게 만듭니다. 김정일 1인 지배체제가 확고하고 군부도 막강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북한 내부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토론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일부 학자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중국과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려 한다는데.

"북한은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이를 완화하고 싶다는 계산이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취할 수 있는 안보 전략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쇄국을 하는 거죠. 조선시대까지 그랬고 지금 북한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 전략이죠. 둘째, 주변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문제는 중국이 워낙 강대했고, 20세기 들어서는 일본까지 강대국의 대열에 든 거죠. 셋째, 한반도와 이해관계가 없는 먼 곳의 강대국을 끌어들이는 겁니다. 한국전 당시 유엔군의 성격이 그런 거죠. 북한이 쇄국을 계속할 수 없다면 둘째와 셋째 전략을 혼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성향이 한.미 동맹을 흔들었다는 지적이 있는데.

"좌파.우파를 떠나서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과정에서 리더십이 돋보였고 양국 관계도 좋아졌죠. 양국의 대북 정책도 접점을 찾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반미 감정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번진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 내 군사력을 재편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민족주의의 부상으로 한.중.일 관계도 좋지 않은데.

"중국에서 공산주의 이념이 옅어지면서 민족주의가 일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중화 민족주의가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민족주의 열기는 중국보다는 덜합니다. 일본은 민족주의라기보다는 더 이상 제2차 세계대전의 장본인이나 주변국가로 머물기 싫은 겁니다. 그러나 민족주의 때문에 3국 관계가 나빠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한국과 중국을 방문하고,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일 결과를 봐도 그렇습니다. 어차피 동아시아 국가들은 민족주의.세계주의.분권주의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합니다. 여기에 미국과의 적절한 관계 설정도 중요하고요. 한국 정부는 민족주의를 이용하기보다는 일정 부분 통제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여성이나 흑인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향후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관심을 두는 이도 생겼습니다. 문제는 힐러리 개인에 대한 평가입니다. 사람들은 힐러리가 너무 딱딱하다고 여깁니다. 반면 버락 오바마 후보는 부드럽게 유권자에게 다가와 무척 매력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정리=강병철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 로버트 스칼라피노=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49~90년 UC버클리 정치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동아시아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다. 동아시아 정치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논문과 저서를 500편 이상 펴냈다. 한승주 고려대 총장서리가 수제자이며 포스코 등 국내 몇몇 기업의 고문직을 맡을 정도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