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 여건은 갖춰졌는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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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나 기업차원에서 아무리 큰 힘을 들여도 좀처럼 이렇다할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기술개발 활동이다. 기술개발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갖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이 골고루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8일의 과학기술혁신 종합대책 회의에서 제시된 각종 시책들은 한정된 국가자원을 과학기술개발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동원하기 위해 투자확대,세제·금융지원 강화,연구체제의 확충에 애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것만으로 기술개발이 갑자기 촉진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기술개발 촉진을 위한 필요조건의 일부는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물론 그런 조건들이나마 계속 충족시켜 나가려는 시도 자체를 과소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제시된 시책들을 고스란히 실천에 옮기는 일도 결코 수월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기술입국을 외치며 기술력 배양의 중요성을 강조해온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 부진과 이로인한 산업경쟁력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는 해가 갈수록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산업은행이 최근 발표한 주요 수출산업의 기술경쟁력 현황은 기술경쟁력의 현주소를 한눈에 보여준다. 신제품 개발능력과 소재·부품의 자급도 면에서 대부분의 산업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으며,특히 컴퓨터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소재·부품 자급도는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모든 산업부문에 걸쳐 우리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기술에 비해 앞으로 개척해가야할 기술분야가 개발의 난도면에서 월등하게 높은 수준에 있음을 감안할때 앞으로의 개발노력은 그만큼 더 강화돼야 함을 알 수 있다.
기술개발의 속도가 지지부진 했던 것은 한마디로 개발노력의 강도가 기술과제의 난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술개발 노력이 불충분했던 이유를 더 파고 들어가면 정부의 지원시책이 모자랐던 탓도 있겠지만 기술개발의 으뜸가는 주체인 민간기업들로 하여금 기술개발에만 몰두할 수 없도록 만든 사회적 여건이 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술개발·생산·판매·자금조달·대정부 로비 등 기업경영의 모든 활동분야중에서 기업발전에 가장 중요한 분야가 정말 기술개발이었던가를 심각하게 물을 때가 왔다. 홍보·자금쪽의 일이나 관청출입이 기술개발보다 더 중요하다는 기업의 판단이 존속할 수 밖에 없는한 대폭 늘어난 정부의 세제·금융지원도별 효험을 거두지 못할 것이 뻔하다.
개방과 국제화 시대에 우리가 또 하나 유념해야할 것은 기술의 자주성이다. 힘들고 위험부담이 큰 독자기술개발보다 외국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사업상 유리한 여건이 계속되면 구축해 놓은 기술의 자립기반마저 붕괴되고 말 위험이 있다. 정부의 기술개발 촉진정책은 앞으로 이에 대한 대비책을 한층 보강해 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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