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첫 영화"『월하의 맹서』아닌『국경』이다"|당시 신문기사·광고 통해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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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 최초의 극영화는 지금까지 정설로 인정돼온『월하의 맹서』가 아니라 『국경』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 은 사실은 영화평론가 조희문씨가 박사학위논문『초창기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한국에서의 영화 전래와 생성을 구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조씨는『월하의 맹서』가 제작돼 경성호텔에서 시사회를 가진 1923년4월9일보다 석 달 가량 앞선 1월11일자 동아일보에서『국경』상영을 알리는 광고를 찾아냈다.
당시 광고는「예고(1월13일부터)…조선영화 대 활극 국경 전습 권 조선초유의 대 영화요···」라며『국경』이 단성사에서 상영된다고 알리고 있다.
조씨가 같이 발굴한 1923년1월15일자 매일신보는「조선영화라는『국경』-전열 권은 13일 밤에 상영하였으나 부득이한 경유로 하루만 하게되고…대신 서양문예영화 상장 코저 한다」는 보도를 해『국경』이 첫 한국영화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조씨는 또 이번에 함께 찾아낸 1926년1월1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이귀영의 회고록『조선영화의 현재와 미래』에서도「…몇 해전 김도산 일파가 박은『국경』이 우리 조선영화제작의 효시가 된 후…」라고 쓰고있어 앞서 신문들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영화사학자 이영일씨 등을 중심으로 당시『국경』이라는 영화가 제작에 들어갔으나 도중에 중단되었으며 따라서 극장에서 개봉되지 않은 기록상의 작품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 일반에 공개된『월하의 맹서』가 최초의 극영화라고 주장했고 이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조씨의 논문으로『국경』이 첫 영화임이 밝혀졌는데 조씨는 이것이 단순한 기록사적인 정정을 넘어 『월하의 맹서』는 조선총독부가 저축장려 목적으로 전국에서 무료 상영한 영화인데 비해『국경』은 상업목적으로 단성사에서 유료 상영한 영화라는 대단히 뜻이 깊은 성격을 갖는다고 평했다.
즉 한국영화의 태동이 처음부터 상업자본을 동원, 일반 상영함으로써 다른 영화의 제작비를 확대 재생산하는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인 제작·배급구조를 갖추고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영화가 연쇄극공연·시국영화소개 등으로 이미 대중적 기반을 확실하게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러나 조씨는『국경』이 신파극단인 신 극좌에서 만든것은 틀림없으나 영화내용이 무엇이며, 왜 하루만 상영하고 중단됐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조씨는 극단 또는 극장의 문제였기보다는 영화내용이 일제의 검열에 걸려 상영이 중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했다.
영화는 특유한 선전 설득력 때문에 일제의 주요한 검열대상이었고,『국경』이 첫 한국인제작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의 어떤 내용을 문제삼아 상영을 중지시키지 않았겠느냐는 풀이다.
조씨는 또 이번 논문에서 영화의 초기적 형태인 연쇄극(장면마다 스크린에 배경을 비추고 무대에서 배우가 연극을 하는 형식)의 효시인 금도산의『의리 적 구투』도 제목이『의리 적 구토』임을 당시 각종자료를 통해 아울러 밝히고 있다. 조씨는 이와 함께 한국에서의 첫 영화전래는 1900년 전후영미연초희사의 광고목적 영화상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1899년 미국인 여행가 버튼 홈스 일행의 어전상영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국영화사의 초창기를 소상히 밝힌 조씨의 이번 논문은 국내 영화학 박사 1호 논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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