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아줌마 옷 시장 삼킨 '동대문표 악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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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오 회장

탤런트 송윤아는 악어표 '크로커다일 레이디'를 입는다. 톱 스타 송윤아를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 여성 캐주얼 브랜드 '크로커다일 레이디'는 원래 동대문 시장 출신이다. 1996년 싱가포르 패션업체 브랜드의 라이선스로 출발한 이 동대문표 브랜드는, 지금은 여성 의류업체로 드물게 3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린다. 또 한 때 유명 숙녀복 브랜드였다 시장에서 물러났던 '샤트렌' '끌레몽뜨' 등을 끌어들여 자매 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고,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주인공은 형지어패럴 최병오(54) 회장이다. 최 회장은 그야말로 동대문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동대문 의류업계 스타 중 한 사람이다. 부산 출신인 최 회장이 동대문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82년께. 친척 소개로 '크라운사'라는 여성의류 도매점을 세우면서부터다. 그는 여기에서 동대문 옷 답지 않게 옷마다 '순면' 'Q마크' 등 소재.규격 표기를 깔끔하게 표기했고, 고급 소재도 사용했다. 소매상들 사이에 "크라운사 옷은 팔기 쉽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대박'을 냈다. 최 회장은 "단숨에 집 두 채를 마련했을 만큼 사업이 잘 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동대문 생활 10여년 만인 93년 11월 크라운사는 부도를 냈다. 어음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됐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머니가 집을 담보로 마련해준 2000만원을 들고 다시 동대문을 찾았다. 이듬해 남평화시장 3층 한구석에 한 평 남짓한 가게를 얻었다. 그것도 남의 매장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전전세였다.

최 회장은 "다시 한 번 불같이 사업이 일어나라"고 불[火]이 세 개나 들어간 등불 '형(熒)' 자에 터 '지(址)' 자를 쓴 '형지'라는 새 이름을 걸었다"고 했다. 형지어패럴은 이렇게 초라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광희시장 지하 1층으로, 다시 1년 만에 이 시장 1층의 4평짜리 매장으로 확장했다. 새벽 2시 퇴근하고 아침 7시 출근하는 억척 생활 7년 동안 그는 은행에 돈을 입금만 했고 찾은 적이 없다.

여성의류 사업을 하면서 그는 브랜드에 목이 말랐다. 브랜드 하나로 똑같은 옷 가격이 천지차이가 나는 것을 보며, 그는 꼭 브랜드 사업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우연히 유명 악어 브랜드를 닮은 싱가포르 패션업체의 '악어(크로커다일.Crocodile)' 브랜드를 발견했다. 그는 '저거라면 잘할 수 있겠다' 싶어서 본사와 접촉해 한국 내 상표 사용권을 따냈다. 원래 여성복이 없는 회사였지만 그는 이 악어표에 '레이디'를 붙여 여성 캐주얼 브랜드로 재창조했다. 브랜드 컨셉트는 30대에서 70대까지 입을 수 있는 '국민 여성복'이었다. 그동안 20대를 타깃으로 한 디자인이 가미된 캐주얼 의류는 많았지만 몸이 불어나는 30대 이후 여성들이 예쁘게 입을 캐주얼 의류는 거의 없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주요 마케팅 전략은 '우회전략'과 '다점포 전략'이었다. 사업 초기, 그는 서울 장안동에 '크로커다일 레이디'의 시범점포를 열고 대리점 모집에 들어갔다. 서울 명동, 광주 충장로 같은 특급상권 대신 지방 변두리 지역, 아파트 상가, 재래시장 인근 등 일명 B급 상권을 파고들었다. 대리점 1호도 경기도 시흥이다. '값은 동대문 시장급이지만 품질은 백화점급'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수도권, 일급 상권에도 상륙했다. 지금은 서울에만 100개, 수도권에 170개 점포가 있다. 본격적인 브랜드 사업을 벌인 지 10여 년 만에 362개 매장을 확보했다. 상설 할인점(54개)을 합치면 416개로 늘어난다. 그는 "사내에서도 (대리점) 150개 이상은 무리라고 했지만 시골 읍내, 지하철 입구마다 악어가 한 마리씩 들어가야 한다고 고집했다"며 "대리점이 500개는 돼야 양파가 떨어지면 동네 슈퍼마켓 가듯이, 나들이 갈 때면 우리 옷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품질은 기본이다. 경쟁력은 '색(色)'이다. 형지는 90년대 초반만 해도 골프 의류에 주로 쓰던 핑크.연두.바이올렛 같은 화사한 계열의 색을 도입했다. 최 회장은 "특히 의류에 형광 느낌이 나도록 해 주부부터 할머니까지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각 대리점의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을 확보했다. 90년대 후반, 대리점이 15개가 되면서 5억~6억원을 들여 최신의 전산 장비를 도입했다. 외형이 급속도로 커졌지만 전산 투자가 돼 있었던 덕분에 누수 없이 성장했다는 게 최 회장의 분석이다.

형지는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카텔로' 브랜드로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다 2005년 인수한 '샤트렌' '끌레몽뜨' 브랜드로 정통 숙녀복 시장에도 진출했다. 최 회장은 "패션 브랜드 사업으로 2011년 매출 1조원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글=이상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안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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