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조선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정치학회의 하계 학술대회는 여러 측면에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급호텔에서 3당 대통령후보들에게 비용을 물렸다고 해서 말썽을 빚더니 토론내용은 더욱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3일 저녁 김영삼민자당대표 초청 만찬석상에서는 김 대표가 집권하면 정치학자들을 많이 등용해달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정치가 걸림돌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이는 우수한 두뇌를 제대로 활용못하기 때문』(경희대 민준기교수)이라며 정치학자의 중용계획에 대해 물었을때만 해도 적절한 질문은 아니지만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약과였다. 이어 동국대 박근호교수(민자당 전국구후보 36번)는 『선비는 공짜술을 좋아한다』며 참석자들의 지지확보를 위해 김 대표에게 2차 술을 사라고 한뒤 『대통령이 되면 정치학자를 몇사람이나 총리나 장관,전국구의원으로 뽑아줄 것이냐』고 물었다.
박 교수는 지난 총선에서 정치학자로는 여야 통틀어 자신이 유일한 전국구공천자인데 36번이어서 떨어졌다며 『전국구공천이 잘못됐다』고 비판까지 했다.
김 대표조차 당황해서 『그런 질문에는 내가 답변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일축했고 참석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드디어 손봉숙여성정치연구소장은 『정치학회 회원이 전국구의석이나 기다리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부끄럽다』며 『개인적 부탁이 있으면 정치학회의 이름을 빌리지 말고 하라』고 공박해 참석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박 교수의 언동은 순전히 한 개인의 추태로 봐줄 수도 있지만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는 정치학회의 분위기와 세미나 운영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정치학이란 학문의 성격상 현실정치를 외면할 수 없고 그런 측면에서 3당의 대통령후보를 초청해 연설을 듣는 기회를 갖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후보들에게 대회비용을 부담시키거나 식사값을 내게해놓고 어떻게 유권자들의 향응제공 요구행태를 비판하고 정치인들의 부도덕성을 나무랄 수 있을지 묻고싶다.
또 집권당 후보에게는 일문일답할 시간을 주면서 김대중 민주당대표는 일문일답을 희망했는데도 『다음 일정상 안된다』며 기회마저 주지 않은 것은 정치학자들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의심케 한다.
연 회비 2만원밖에 안되는 정치학회가 특급호텔에서 2박3일간의 호화판 숙식을 누리면서 학술대회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부조리를 잉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경주에서>경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