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혐의 인정해 한 때 기각설 돌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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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2일 새벽 0시 20분 무렵 서울 남대문경찰서 앞. 경찰 승합차가 도착하자 김승연 회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내렸다. 한화 그룹 관계자는 "사건 초기에 대응을 잘못해 결과가 더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2일 새벽 0시 20분 쯤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구속수감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법원, 장고(長考) 끝에 구속 결정=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린 11일 오전 법원과 검찰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혐의 사실의 대부분을 시인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법원을 찾은 20여 명의 남대문경찰서 수사팀 관계자들도 초조해 했다. 수사팀은 김 회장이 혐의를 부인할 경우에 대비해 피해자 5명을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서울중앙지법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김 회장이 '반성 모드'로 전환하면서 피해자들의 역할은 필요없게 됐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김 회장 측이 실질심사에서 폭행을 시인하면서 판사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광만 영장 전담 판사의 결정이 오후 11시를 넘기며 늦어지자 기각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광만 부장판사는 "6개의 혐의에 대한 소명이 된 데다 증거 인멸 시도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

경찰은 구속영장에서 "피의자는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으로 일반인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피의자는 사회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사적인 보복을 위해 사용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피의자는 회사 직원과 외부세력을 사병처럼 동원해 사적 보복을 감행,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무력하게 했으며 '규범에 대한 신뢰'라는 사회적 법익을 침해했다"고 덧붙였다.

◆ 4시간가량 진행된 영장실질심사=김 회장은 11일 영장 실질 심사에서 폭행 혐의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김 회장이 혐의를 시인하는 쪽으로 태도를 급선회하자 수사팀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검찰과 경찰은 김 회장 측이 법정에서도 부인할 것을 전제로 대비책을 마련해 왔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기록도 완벽하고 목격자도 모두 확보했다"며 구속 영장 발부에 자신감을 보였다.

이에 앞서 김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17분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경찰 승합차를 타고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경찰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 김 회장의 자택에서 기다리다 오전 9시40분 김 회장을 승합차에 태웠다. 짙은 회색 양복 차림으로 차에서 내린 김 회장은 미리 발언을 준비한 듯 취재진을 향해 "국민에게 다시 한번…"이라고 말하려다 끝을 맺지 못했다. 취재진이 몰려들어 말을 이어갈 상황이 안 됐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혐의를 묻는 기자들에게 비장한 표정으로 "법정에서 밝히겠다"며 짧게 답하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이광만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고려한 듯 점심 시간을 늦추면서까지 실질심사를 계속했다. 오후 1시30분쯤 김 회장에 대한 실질 심사가 끝났고, 한화그룹 경호과장 진모씨에 대한 심사는 2시30분까지 이어졌다. 먼저 실질심사를 마친 김 회장은 법원 안의 구치감에서 한 시간 동안 진 과장의 심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화 측은 이 사이 김 회장의 도시락을 준비해 식사를 하게 했다. 법원은 과도한 취재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김 회장이 머무는 장소를 바꿨다. 김 회장 측이 실질심사에서 "(취재진이 몰려) 옷이 찢어질 뻔했다"며 편의를 봐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경찰호송실로 이동하기 위해 법원 밖으로 나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비교적 많은 말을 했다. 그는 "제가 수양이 부족하고 부덕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 같다"고 말했다.

김승현.민동기.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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