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0일 한국 쌀 스위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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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0일 국산 쌀이 해방 후 처음으로 수출 배를 탄다. 현재 진행 중인 수출 상담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올해 최대 2만t 이상의 쌀 수출 계약도 가능할 전망이다. 이로써 쌀 자급에 집착해 온 농업정책의 방향도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본지 5월 8일자 1면.사진 참조>

정부는 11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그동안 막아온 국산 쌀 수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정부에 쌀 수출 신청을 낸 경기도 고양시 덕양농산영농조합은 다음달 10일 스위스로 200t의 쌀을 선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쌀 수출은 양곡관리법에 따라 농림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야 하나 정부는 그동안 추천을 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수출을 막아왔다.

농림부 오경태 식량정책과장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DDA) 협상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쌀 수출을 막아왔으나 더 이상 이 정책의 실익이 없어짐에 따라 쌀 수출을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오 과장은 "덕양농산 외에도 세 곳이 수출 상담을 진행 중이어서 올해 1만2000~2만2000t의 수출이 성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쌀 수출길 열렸다=정부는 1994년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면서 쌀 수출을 허가제에서 추천제로 바꿨다. 그러나 농림부 장관이 추천서를 내주지 않으면 수출이 불가능해 사실상 허가제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는 이를 선착순 추천제로 바꾸기로 했다. 정부가 정해 놓는 물량 범위 안에서 먼저 신청서를 낸 사람부터 추천서를 써 주겠다는 것이다. 수출 자격에도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수출계약을 증빙할 수 있는 계약서와 신용장 등 서류만 갖춰 농림부 식량정책과에 직접 제출하면 된다.

한도는 현재 한국이 WTO 협정에 따라 매년 수입해야 하는 쌀 가운데 시중에 팔아야 하는 물량 범위까지다. 올해는 4만8000t이고, 2014년에는 12만2000t으로 늘어난다. 쌀 수출을 먼저 시작한 일본이 2005년 760t 수출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출 제한은 없는 셈이다. 나아가 정부는 쌀 수출 지원책도 내놓았다. 채소.과일에만 주던 수출자금과 수출 물류비, 시장 테스트비를 쌀 수출 때도 지원한다. 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해 시장정보 제공은 물론 매매 알선도 한다. 중장기적으로 국산 쌀 브랜드를 키워 쌀 농사를 수출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 국내 쌀 시장 빗장도 풀리나=쌀 수출과 국내 쌀 시장 개방은 별개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쌀 수출을 허용하면서도 한도를 수입쌀 시판용 물량 범위 안으로 제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쌀을 수출하더라도 이 정도 물량이면 연말께 재개될 DDA 협상에서 쌀 수입국으로서 지위가 위협받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다만 농정의 방향은 대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쌀 자급이란 목표는 의미가 없어졌다. 따라서 증산보다 품질 경쟁력 높이기가 쌀 산업의 지상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쌀 수출을 위해서는 물론 국내 쌀 시장 사수를 위해서도 그렇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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