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택원특파원 프놈펜서 6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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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잇단 특혜조치로 외국기업 유치/한국,정부의 대「캄」 투자지원 시급
국제수준이라는 캄보디아나호텔의 수도꼭지를 틀면 「흙탕물」이 쏟아진다. 「이 물은 먹을 수 없음」이라는 안내문이 굳이 필요없을 정도로 창밖에 흐르는 누런 강물과 빛깔이 같다.
이같은 프놈펜시의 상수사정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규모 공사가 최근 일본회사에 낙찰됐다. 72년 폴포트군이 파괴한 이래 절단돼 있는 초초이 참바대교의 복구공사를 무상으로 해주기로 하고 따낸 것이다. 일본은 이밖에도 이미 원유채굴(캄보디아의 원유매장량은 베트남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원시림·금광개발,그리고 각종 전후복구사업에 고루 진출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은 베트남­캄보디아­태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인도차이나 주변 5개국을 잇는 철로망 건설 등 메통델타프로젝트 관련사업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대동아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89년 5월 국명을 「캄보디아인민공화국」에서 「캄보디아국」으로 바꿔 사회주의 냄새를 제거했던 프놈펜정권은 대대적인 자본주의체제 전환과 함께 전후복구사업에 나서 외국의 투자와 경제진출을 북돋우고 있다. 프랑스가 개설하고 미국이 월남전 당시 확장한 캄보디아 최대항구 콤폼송시가 지난해 11월 「자유무역지대」로 지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홍콩에서 사업가 5천명이 이주해 올 것이라는 「풍문」이 전해지고 있을 만큼 정부는 면세조치와 공장부지 무료대여,영주권제공 조치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전쟁의 논리」가 「시장의 질서」로 교체되고 있는 전환기에서 약소국 캄보디아는 새로운 교역과 경제의 중심지로서 「제2의 홍콩」으로 부상할 계획에 부풀어 있다.
프놈펜정권을 뒷받침하던 구소련과 베트남의 지원이 80년대 후반 제로선으로 떨어졌다.
모스크바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캄보디아 유학생들이 철수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중년의 택시운전사가 영어회화책을 끼고 다닐 만큼 「서양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이미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의 교두보로 새로운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중요한 경제고리로 편입되고 있으며 이같은 변화는 미국·일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이다.
프놈펜 거리에서 부닥치는 것도 오스트레일리아·대만·싱가포르·태국·인니·프랑스·영국·일본·미국 등 서방측 상인들이다. 물론 한국인도 있다.
『한국정부는 한국기업의 캄보디아 진출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을 바랄 형편이 못된다고 해도 제발 가로막지나 말아달라는 한 업자의 하소연이었다. 한국정부가 분류한 해외시장 진출국 기준은 A∼D급이 허용,E급은 고려,F급은 「불가」로 되어있는데 캄보디아는 여전히 「F」급으로 변함이 없다.
『일본은 21세기를 향해 뛰고 있는데 우리는 안방에 앉아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나 우려하고 있으면 무얼합니까.』
원목벌채·금광·석유개발 등에서 일본에 기선을 제압당하고 있으며 결국 대세가 기울고 나면 한국업체는 일본의 하청업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이 모험적인 한국사업가는 정부의 무감각을 안타까워했다.
캄보디아가 친북한으로 알려져온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
캄보디아인들은 북한­캄보디아 관계는 김일성­시아누크의 「개인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프놈펜정권의 치아심대통령,훈센총리 등은 「불과 20여년만에 공업국으로 성장한 한국을 배우기 위해」 한국방문을 계속 타진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14일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시아누크 자신도 그의 아들 라나리트가 평양방문 뜻을 비치자 『평양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가려면 서울부터 다녀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달초 월남과의 대표부 교환으로 한국의 「방북정책」이 사실상 완결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파견요원이나 현지의 공식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캄보디아 현실에 비춰진 북방정책이란 이미 봄이 완연한데도 겨울외투를 벗지않고 있는 냉전적 발상에 머무르고 있다는 공허감을 지울수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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