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 아닌 최고 경영자 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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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통령' '강한 콘텐트' '청계천 복원에서 보인 추진력' '실전과 실적의 정치인'등 자신이 강점으로 내세워온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미지를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 최고 경영자가 되겠다"고 한 것도 같은 컨셉트다.

이 전 시장의 출마 선언 시점은 무척 미묘했다.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박근혜 전 대표가 거부하며 한나라당이 분당 위기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 결행됐다.

그래서 이날 이 전 시장의 경선 출마 선언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1992년 3월 대선 출마 선언을 연상시킨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표로 치른 3월 총선에서 민자당이 참패한 뒤 나흘 만에 대권 도전을 공식으로 선언해 국면을 바꿨다.

캠프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판 흔들기'에 흔들리지 않고 대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의미가 있다"며 "지지율 선두 주자를 굳히면서 한나라당의 주류로 올라섰다는 자신감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당의 결정을 거부하고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비주류의 위치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이 전 시장은 현 집권 세력을 '말 잘하는 대통령' '무능한 이념 세력'로 규정했다.

"낙관의 역사가 비관의 역사로 바뀌고 있다" "기회의 나라가 좌절의 나라가 돼 버렸다"고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말↔일' '이념↔실용'의 차이를 부각해 현 정권과 자신의 리더십을 대비시켰다.

이 전 시장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리더십, 도전과 시련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리더십, 남들이 가지 않은 새 길을 여는 창조적 리더십을 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로 불리는 인생역전의 성공담과 청계천 복원과 서울시 예산 절감, 대중교통 체계 개편 등 서울시장 재임 시에 보여준 업적 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출마 선언문에서 그는 자신의 '도전'과 '응전'의 인생역정을 부각했다.

이 전 시장은 "끼니를 잇기도 힘들었던 가난한 청년이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서울시장을 거쳐 나라를 이끄는 자리에 나서게 됐다"면서 "어쩔 수 없이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원천적으로 경쟁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에겐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따뜻하고 행복한 가족이 가장 중요한 인프라"라고 역설했다.

'잘사는 나라, 강한 나라'란 기존의 캐치프레이즈엔 '따뜻한 사회'를 포함시켰다. 기업인 출신으로 성과 일변도, 이익 추구형의 차가운 사람이란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잠재우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떻게 경제를 살릴 것인가.

"난 오랜 기간 실물경제를 해 왔다. 온 세계를 다니며 일류 기업과 지도자를 만나며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데 한몫을 해 왔다고 자부한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책은 많고 살리겠다는 사람도 많지만 실질적으로 살릴 사람은 많지 않다."

-출마 선언이 박 전 대표를 자극할 수 있는데.

"강 대표가 갑자기 중재안을 발표해 날짜가 중복됐다. 오래전에 결정한 것을 바꾸기가 뭣해 계획대로 했다.

박 전 대표는 어느 누구보다 한나라당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번 결정에 누구 못지 않게 불만이 있다. 불만이 있을 수 있으나 국민의 따가운 눈총, 화합을 요구하는 당원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서울시장 때 월급 전액을 기부했는데 대통령이 돼도 그렇게 할 것인가.

"서울시장 땐 월급을 환경 미화원 자제들의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대통령이 되면 과거 방식대로 나름대로 해 나가겠다."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주택 하나를 장기간 보유한 사람이나 은퇴자에겐 예외 규정을 둬 종합부동산세를 면제해 줄 필요가 있다. 확고한 정책과 공급 확대 등 종합적 대책으로 제가 한번 잡아 놓겠다."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보나.

"서민 문제 해결과 FTA 문제가 반드시 직결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보면 FTA를 통해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경제에 기회를 더 줘서 서민들이 더 좋아질 수 있다. 다만 직접 피해를 보는 낙농업 등의 종사자들은 미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써서 경쟁을 통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대선 예비 후보=2004년 3월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도입된 제도로 대선에 적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선거일 전 240일(4월 23일)부터 중앙선관위에 서면으로 신청하면 예비 후보로 등록된다. 예비 후보자가 되면 선거사무소를 설치하고 간판.현수막 등을 게시할 수 있다. 명함을 직접 배부하면서 지지를 호소할 수 있고, 홍보물이나 e-메일 발송도 허용된다. 2005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이번 대선부터는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가 탈락한 후보는 대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예비 후보 제도는 당내 경선과 관련한 이 규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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