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바람-오종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얼마나 밤 깊었을까 편안한 잠 들었을까요.
숨쉬기가 담담해요 비린내나는 세상이에요. 어디서나 쉽게 비늘을 벗는, 훌풀 살아가는 세상이 여기 있어요. 싱싱한 사내가 좋아요. 아, 그 사내 어디 가고 냄새나는 사내가 내 곁에 누웠어요. 무서워요. 하지만 어절 수 없어요. 누구나 쉽게 타고 넘을 수 있는 몸뚬이인데요, 뭘 그래요. 산업쓰레기다 폐수다 매연이다 온갖 공해들이 욕정을 채우는 방인걸요. 까짓거 내 몸뚱이 하나 거덜난들 눈 하나 깜짝하겠어요. 쾌락만 맛보면 그만인데요, 안 그래요. 그런데 난 뭐예요. 온통 상처투성이의 알몸뿐이잖아요. 추워요, 따뜻한 이불이 되어줄 초록별들, 초…록…별…들….
하느님, 그 초록별들 어디로 갔을까요.

<시작메모>
산하가 썩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자는 소리가 시끄럽다. 같이 아파하며 내는 소리가 아니라면 공염불에 그친다.
아직 우리 일상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보호는 공염불로 들릴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개인이 저지르는 죄가 아니라 공해이기 때문일 것이다. 집단적으로 지구를 학살하고 있기에 그에 따른 죄의식은 엷다.
공해를 개인적 절실함으로 끌어내야 한다. 공해가 사회적 캠페인화되기 보다는 개인적 양심의 실전적 양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구와 함께 신음하는 자신, 나아가 인간의 자연성을 도출해 낼 수 있다. 기실 공해로 인해 죽어 가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편하게, 가볍게 살려는 삶에서 쓰레기는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는가. 그러다 보면 삶 자체가 쓰레기는 아닐까. 두렵다. 별을 잃고 일상의 허접 쓰레기만 쌓아 가는 삶이.

<약력>
▲1959년 광주출생
▲1984년 동인지 『지금 그리고 여기』통해 작품활동 시작
▲사화집 『어둠은 어둠만이 아니다』『이 땅의 그리움을 알기 시작했다』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