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만으론 시청자 눈 못 끌어”|MBC-TV 『PD수첩』 김세영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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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MBC-TV의 『PD수첩』이 달라지고 있다.
현장고발에 골똘했던 옛 장이 넘어갔다. 대신수첩의 새로운 여백은 사회현상을 분석한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초창기의 고발위주에서 벗어나 분석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지난 90년 5월 첫 방송한 이후 2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바삐 돌아~가는 우리 사회도 적찮게 변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방송 초반 당시의 반응은 가위 폭발적이었습니다. 노사문제·극빈 층의 고충 등 방송에서 다루기 껄끄럽던 소재를 물 불 가리지 않고 다뤘으니까요. 내용이 거칠고 구성도 엉성했지만 시청자들의 지지는 높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어요.』
『PD수첩』의 팀장인 김세영PD(38)는 초창기 강렬한 인상을 주던 이 프로가 요사이 다소 풀죽어 보이는데는 「무슨 사주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PD수첩』만큼 흔히 말하는 외부압력을 받지 않는 프로도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문제는 갈수록 힘들어져 가는 소재발굴이다.
『예전처럼 현장고발형식으로 보는 이의 감정에 호소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봅니다. 때문에 한 쪽의 얘기만 듣고 흥분하는 내용으로 이 프로를 이끌어갈 수는 없잖습니까. 보는 사람이야 후련하고 좋지만 감정에 치우칠 때의 부작용이 반드시 남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김씨 등 제작진이 최근 고심 끝에 착안해 낸 것이 이 프로의 분석기능 강화다. 선택한 사안 하나라도 세밀히 분석하고 냉정하게 다루자는 것이다. 종전 같이 시사성을 띠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 이 프로가 다룬 내용들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지난 23일 방송한 「컴퓨터산업 좀먹는 불법소프트웨어」는 좋은 본보기다. 한 사람이 몇 년 걸려 개발해놓은 소프트웨어를 힘 안들이고 「베껴먹기」 바쁜 현 풍토의 문제점을 제대로 꼬집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김씨는 그러나 『이 같은 분석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정착하기까지에는 아직 많은 어려움이 남아있다』며 당분간 고발성 내용을 적절히 가미해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래도 어떤 현상을 분석하려면 보다 많은 인력·시간·정보 등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람만 해도 2년 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으니 까요.』
이 프로는 5∼8년 차 PD 4명이 이끌어가고 있고 지난달부터 데스크를 맡은 김씨가 중간에서 교통정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가끔 후배들을 거들어 취재를 하고 직접 출연도 한다.
봄철 개편과 함께 등장한 경쟁방송사의 심야 연예 오락프로와 시청률 싸움을 하느라 다소 피곤해진 점도 없진 않지만 시청자들의 꾸준한 성원이 제작진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 동안 어려움이 꽤 많았지요. 관공서의 경우 취재통로가 없고 PD취재에 익숙지 않은 관리들로부터 쌀쌀맞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보도국 기자들로부터 취재내용에 심층 성이 약하다는 눈총도 받았고요. 지금은 어느 정도 그 같은 선입견이 많이 없어져 행동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반면 그는 이 프로를 민원해결창구로 여기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얘기를 일일이 다 들어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PD는 78년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81년 MBC에 입사, 주로 다큐 물·교양프로를 연출해왔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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