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전기계 못갖췄다”/정간물 등록거부는 부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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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자기소유 아니라도 무방”/전민련신문 사건/헌재,정간물법 한정위헌 결정
사이비언론 난립 등을 방지하기 위해 언론매체의 일정 시설기준을 규정한 정기간행물등록에 관한 법률(제7조 1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으나 윤전기 등 시설의 소유 등을 규정,정기간행물 등록을 지나치게 엄격히 규제할 경우에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한병채헌법재판관)는 26일 「전민련신문」을 공보처등록없이 발행한 혐의로 기소된 오충일씨(52·목사·당시 전민련 공동의장) 등 2명이 낸 위헌심판사건에서 『정간물법 제7조 1항은 규정에 의한 시설을 자기소유이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헌법(제21조)상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언론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선언으로 헌법과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비판적인 간행물의 등록을 막아온 행정부의 월권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일반정기간행물(일간신문·주간신문·통신)을 발행하기 위해 반드시 고가의 인쇄시설을 소유할 필요없이 위탁인쇄 등 임대차 또는 리스계약을 통해 일정시설을 갖추면 가능하게 됐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언론·출판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으로 이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헌법의 기본원리』라고 전제하고,『이를 수행하는 언론매체의 지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공공복리와 질서유지를 위해 법률로 필요한 물적 시설을 갖추어 등록하도록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과잉입법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법에 따라 일반정기간행물의 해당시설인 윤전기 1대이상 및 부수인쇄시설을 자기소유이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 정간물법 시행령(제6조)은 행정부가 상위법을 확대해석,등록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언론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할 우려가 있어 위헌』이라고 밝혔다.
오씨 등은 89년 3월10일부터 같은해 6월25일까지 월2회씩 8회에 걸쳐 당시 문공부(현공보처) 등록없이 「전민련신문」을 발간한 혐의로 기소되자 위헌제청을 신청,90년 1월 서울형사지법이 위헌심판을 제청했었다.
◎비판적 언론 억제수단 악용 제동/“정간물 등록자체가 위헌” 의견도(해설)
헌법재판소가 26일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 일부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그동안 정부가 이 법을 운용하면서 헌법정신과 법률의 입법취지와는 달리 이 제도를 실질적인 「정기간행물 허가제」로 운용해 왔다는 잘못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헌재는 또 이번 결정을 통해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인 언론·출판자유의 보장과 함께 언론매체의 책임과 의무를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최대한의 균형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언론·출판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근간』이라고 천명하면서도 『무책임한 언론기관의 난립을 막기위한 정간물법상의 등록제도는 합헌』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같은 헌재의 언론·출판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강조한 뜻은 이날 함께 결정선고된 정간물법 납본제도(제10조)에 대한 같은 취지의 합헌결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헌재가 상위법인 정간물법에 대해 합헌해석을 내리면서도 굳이 하위법령인 시행령(대통령령)의 인쇄시설 소유필증 제출제도(제6조)의 위헌성을 지적한 것은 행정부가 「전민련신문」「전교조신문」「언론노보」 등 비판적 성향이 강한 정기간행물의 발행을 억제하기 위한 편법으로 이 제도를 악용해온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재판부는 『등록조건으로 인쇄 및 부대시설을 갖추도록한 것은 보도기능의 원활한 수행과 편집제작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적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이 법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확대해석,시행한 것은 위헌성이 있는 법해석』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대당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윤전기의 자기소유를 지나치게 강조해 거대자본을 갖지못한 일반국민의 정기간행물 발행을 원천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등록규제는 일부 주간신문 등이 인쇄시설을 빌린뒤 등록만을 마치고 윤전기 등 인쇄시설을 되돌려주는 편법을 초래하기도 했었다.
헌재는 결국 등록규제제도를 지나치게 엄격히 해석,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상황을 초래한 행정부의 자의적인 시행령 제정을 『입법권을 침해한 월권행위』로 못박아 삼권분립정신을 다시한번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변정수재판관은 이날 한정위헌결정에 대한 소수반대 의견을 통해 『정기간행물의 등록자체가 언론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는 위헌의견을 냈다.
정간물법은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려면 윤전기 1대 이상과 대통령령이 정하는 부수인쇄시설을 공보처장관에게 등록하도록 규정(제7조)하고 있으며 등록없이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면 1년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제22조) 돼있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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