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서 헤매는 브라질경제(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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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살인 인플레」·권력부패 국민 자포자기/“선진 문턱서 좌절”…한국에 타산지석
한때 선진국 문턱에까지 올랐던 브라질이 오늘날 개도국으로 전락한 경험은 한국에 타신지석의 교훈을 주고 있다.
70년대초 국민소득이 1인당 4천달러에 육박하고 철강석·보크사이트·망간·석유·석탄 등 많은 주요 지하자원을 갖고 있는 브라질은 선진국진입이 시간문제로 여겨졌으나 그후 살인적 인플레이션 등으로 개도국 대열로 다시 미끄러졌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낙천적인 성격의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근면성보다는 생활을 즐기려는 지배적 풍토를 첫번째로 꼽을만하다.
열대지방으로 먹을 것이 풍부한 기후조건이 국민들을 일보다는 즐기는데 몰두하도록 한 것이 자연적 요인이었다면 35년 이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권력유지를 위해 노예문화인 삼바춤을 장려하는 등 국민들을 놀이문화로 유도한 것이 브라질 국민성을 변화시킨 인위적 요인이었다. 여기에 정부와 권력의 부패는 많은 브라질인들을 자포자기로 몰아넣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가와 정부공무원이 되는 것은 곧 부자가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브라질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것이 일반시민의 인식이다.
돈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되고,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공무원이 될 수도 없다. 군인이 되거나 권력에 연결되는 줄이 있어야 한다.
정치와 정부권력의 부패는 위에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만연돼 있어 의욕있는 정부가 아무리 좋은 경제계획이나 프로젝트를 마련해도 실천되는 것이 별로 없는게 브라질이라며 한 현지기자는 냉소했다.
이같이 수십년을 살아온 브라질인들이 좋은 정부나 정책을 요구하는 단결력을 보이지 못하는 것도 정치권력자들의 행태를 고착시켜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1년 인플레이션이 4천%를 오르내릴 때도 데모한번 없었던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아무리 잘못해도 이를 탓하는 국민들이 없으니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9년에 29년만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콜로르대통령이 부패추방·대외개방 등 경제를 다시 부추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이는 국민의 근면성결여,정부의 부패,국민들의 무력감·자포자기 등 경제의 퇴행을 특징지어온 문화에 대한 큰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브라질의 이같은 경험과 상황은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춤거리며 선진국과 개도국의 갈림길에 서있는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충고해 주고 있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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