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 계보와 실태」 연구보고|폭력조직 가담 17∼19세 때 선배 등 권유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우리나라 조직폭력배의 백과사전이라 할만한 조직폭력의 역사·특징·대책을 망라한 「조직폭력배의 발호실태와 대응상황」이란 연구보고서가 현역검사에 의해 발간돼 수사실무지침서로 관심을 끌고 있다.
법무 연수원 교관 강지원 고등검찰관이 발간한 연구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는 격투기 등 운동경력이 있는 17∼19세 청소년이 선배·동료의 권유에 의해 폭력조직에 가입함으로써 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표본 조사됐다. 연구보고서 내용 중 제3공화국 이후 조직폭력의 역사를 발췌한다.
◇제3공화국=5·16혁명 세력은 본격적인 조직폭력에 대한 단속과 처벌에 나서 첫해에만 총 검거 1만3천3백87명, 군사재판회부 5백84명 등의 기록적인 실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63년 12월 27일 민정이양이후 단속의 고삐가 늦추어지면서 조직폭력배가 다시 등장, 군림하게 된 조직이 바로 「신상사파」다. 육군 상사출신인 신상현을 중심으로 한 신상사파는 명동·충무로·을지로 등 중심 가를 장악, 65년께 소위 「호남파」가 상경, 무교동을 장악하고 도전해 올 때까지 폭력조직의 패자로 군림해왔다.
이즈음 「호남파」의 일명 번개 박종석이 소공동 유흥업소 영업부장으로 옮기면서 세력을 확장, 독자적인 「번개파」를 구성한다. 그러나 신상사파 세력이 워낙 막강해 사소한 충돌이외에는 조직간의 본격적인 세력대결은 없었다.
◆유신시대=유신직후 조직폭력을 포함한 사회악처단 조치를 취해 호남파 두목 급 9명이 검거되면서 오종칠이 새로운 두목으로 등장, 직계에 조양은을 두고 이들과 별도로 박종석이 박영장·김태촌 등을 거느리게 된다.
74년 주류 공급 권과 상인들의 상납 권을 둘러싼 신상사파와 호남파와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돼 75년 1월 호남파의 특공대 세 명이 신상사파의 주요 거처인 사보이 호텔을 급습하는 사건을 끝으로 주도권이 호남파로 넘어간다. 그러나 명동에 입성한 호남파는 내분을 일으켜 오종철파와 번개파가 대립해오다 76년 3월 엠파이어 텔 주차장에서 오종철이 김태촌 등에 의해 난자 당해 불구가 된다. 이 사건으로 오종철파에서는 조양은이 두목으로 등장하며 번개파에서는 박종석·박영장 외에 김태촌이 강자로 부상하면서 소위 「양은파」 「서방파」로 재편됐다.
이 무렵 광주 대호파의 후신인 신OB파에 속해있다 반대파 두목 박남현의 살해를 지시한 혐의로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서울로 올라온 이동재가 서울을 무대로 자신의 조직 「동재파(OB파)」를 결성하면서 소위 3대 패밀리를 구성해 각축전을 벌인다.
◇제5공화국=80년 2월 2일 조양은은 계엄 중 하부조직인 「순천 중앙파」이창기의 조직 내 반란을 제압하다 수사대상에 올라 구속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복역중이다.
이들 거물급 폭력배의 공백으로 서울 강남일대를 무대로 한 군소 폭력조직이 발호, 「서방파」에서 분리된 ▲맘보파(두목 오재홍) ▲목포파(두목 강대우) ▲서진 룸살롱 사건의 「진석파」등이 우후죽순 격으로 자라났다.
86년 1월 김태촌이 출소하면서 세력재편이 벌어져 「맘보파」등이 규합되고 정치인들과 포커 판을 벌이는 등 유착관계를 재건하면서 세력을 넓혀나갔다. 그러나 김태촌은 그해 9월 채무변제 청탁을 받고 인천 뉴 송도호텔을 습격했다 검거돼 징역 5년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제6공화국=민주화 열풍을 틈타 조직폭력배의 발호가 재연돼 87년 11월 「OB파」의 이동재가 「양은파」의 정택용을 보복, 아킬레스건 절단사건을 일으킨 데 이어 「양은파」가 다시 재 보복을 감행, 이동재의 목과 다리를 난자했고 이 사건으로 이동재는 미국으로 건너가는 계기가 됐다. 또 89년 서방파의 지원으로 국내최대 주류유통업체로 성장한 진원유통 사장 정전식 살해사건이 「이리배차장파」에 의해 저질러지는가 하면 ▲이승완의 「호청련」 ▲폐암으로 출소한 김태촌과 박종석의 「신우회」등이 잇따라 결성되면서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권영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