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먼저 노부부 좌석양보에 정겨움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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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시내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지하철을 타게되었다. 퇴근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차안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 그 중에서 특히 내 시선이 머문 곳은 60은 족히 넘었을 어느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남편으로부터 늘상 보호받길 원해온 나의 잘못된 사고를 일깨워준 감동의 회초리였으며 참 부부의 정의를 내려준 또 하나의 거울이었다.
시청 역을 지나 중간지점에 이르자 안경을 쓴 노신사 한 분과 옅은 살색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나란히 차에 오르시는 것이었다. 각박한 세상은 그분들께 자리양보를 하는 대신 자는 척 눈을 감고 못 본체 고개를 돌리고, 더러는 애꿎은 바닥만 뚫어지게 응시하는 사람들을 아무 표정 없이 수용하고 있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있는 나로서 아니 그들처럼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정말보기 민망스럽고 죄스럽기만 했다. 아무튼 그로부터 두 정거장까지 노부부는 선 채로 목적지로 가고 있었고 세 번째 정거장에 이르자 그제서야 한 젊은이가 자리를 내놓았다.
그런데 자리를 양보 받으신 두 분은 서로 앉으라고 자리 하나를 놓고 사랑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임자가 먼저 앉으래두.』 『괜찮아요. 당신먼저 앉으세요.』
잠시 밀고 당기는 노부부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는지 옆자리에서 눈을 감고있던 또 다른 젊은이가 멋적은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아버지께서는 그 젊은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으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왠지 떳떳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노부부의 훈훈한 모습에고개가 숙여졌다.
과연 난 남편을 위해 어떤 양보를 실천했으며 얼마만큼의 베풂을 보여주었는지 진정 반성하는 기회가 됐다. 작은 것에 서로 위해주고 서로 아껴줄 때 비로소 한가정의 울타리는 튼튼하게 되고 부부의 참사랑 또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리라. 【김미경<서울 관악구 신림9동】<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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