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 이런 직업 저런 직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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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소비자들은 늘 고민한다. 치약 하나를 사려고 해도 웬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선택하려면 헷갈리기 그지없다. 거꾸로 기업도 고민이다. 그 많은 경쟁 상품 중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의 접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마케팅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자기가 팔아야 할 물건들을 소비자들이 선택하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한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 마케팅 전문가 주가도 뛴다. 시장에 물건이 많아질수록 이를 잘 파는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LG전자 가전부문 송승걸 해외마케팅 지원실장과 한국P&G 이수경 마케팅 상무에게서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송 실장은 중동.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해 LG 세탁기.냉장고.에어컨을 1위에 올려놓았으며, 이 상무는 팬틴(샴푸).위스퍼(생리대).질레트(면도기) 등 미국 브랜드의 생활용품을 국내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킨 마케팅 전문가다.

◆시장을 읽는 능력이 관건=송 실장은 2001년부터 5년간 LG전자 튀니지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중동.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했다. 이 지역에 물건을 팔기 위해 이란의 전통음식 조리 기능을 첨가한 전자레인지를 내놓았고, 세탁기에는 아랍 전통의상을 세탁하는 코스를 장착했다. 에어컨을 내놓으면서 미세먼지가 많은 사막지대라는 점에 착안해 공기청정 기능을 강조하기도 했다. 송 실장은 "해외마케팅의 경우 각국의 시장환경과 문화를 파악하고 고객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제품에 반영해야 시장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1990년대 후반 생리대 브랜드 위스퍼의 마케팅을 맡아 20%대였던 시장점유율을 두 배(45%)로 올려놨다. 생리대 얘기를 대놓고 하지 못했던 시절, 방송인.디자이너 등 여대생들이 선호하는 전문직 여성을 모델로 내세워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여성상을 제시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생리대에 액체를 부어 '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발적인 광고도 했다.

◆마케팅 전문가의 역할=마케팅은 제품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이르게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판매 또는 영업보다 담당하는 영역이 넓다. 영업은 상품을 알맞은 가격과 시간에 제공하면서 판매 규모를 확대하는 것인 반면 마케팅은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수익을 더 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것, 즉 시장을 넓히는 모든 활동을 일컫는다. 송 실장은 "원가 경쟁과 기술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브랜드의 힘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마케팅은 축구나 카드게임처럼 상대방과 동시에 움직이는 게임"이라며 "내가 움직이는 동안 경쟁사도, 시장도 움직이기 때문에 내 손안에 있는 카드보다 상대방의 카드와 전략까지 예상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마케팅 전문가 역할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기업은 상품을 인식시키고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글로벌화가 추세인 요즘 마케터에게 영어는 필수다. 다른 외국어도 하면 유리하다. 이 상무는 "마케터는 사교 모임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유창한 발음과 화려한 수사보다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발음보다 전략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송 실장도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자세"라고 말했다. 튀니지에 근무하면서 비즈니스는 영어로 하고, 간단한 프랑스어를 배워 고객과 대화하려 노력했다. "그 나라 사람이 되어 생활과 감각을 그들에게 맞춰야 유능한 마케팅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아프리카.중동 사람들의 삶의 구심점이 종교라는 점에 착안해 한국어로 된 코란을 구해 읽고 이슬람 문화를 공부해 비즈니스에 활용했다.

학부시절 전공은 크게 상관이 없다. 송 실장은 공대 출신으로 엔지니어로 입사한 뒤 마케터로 전직한 경우다. 그는 "제품의 생산과정과 내부 구성을 잘 알기 때문에 기능.성능.견고함을 설명하거나 설득하기 쉬웠다"고 말했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 상무는 "마케팅은 이론이나 기술이기에 앞서 사람을 이해하고 의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전공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열정적인 자질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송승걸(45)

LG전자 가전 해외마케팅 지원실장

-1981~88년 동아대 전자공학과

-88년 LG전자 입사(엔지니어)

-96년 LG전자 전략기획실로 직무 변환

-2001~05년 튀니지 지사장

이수경(41)

한국P&G 마케팅 상무

-1985~89년 연세대 영문과

- 89~91년 제일기획 광고기획자(AE)

- 91~93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경영학 석사

- 94~현재 한국P&G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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