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순례」 나선 정주영후보/오병상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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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신론자인 정주영국민당대통령후보가 주말 이틀간 「종교순례」를 벌였다.
토요일(13일) 아침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북한산의 승가사였다. 이어 일요일엔 천주교 「경로수녀회」가 운영하는 무료양로원과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중앙양로원」 및 조용기목사의 동생 조용목목사가 있는 수원 남부순복음교회를 찾았다.
정 후보는 승가사를 찾았을때 전날 자신이 요청한 보도진의 수행취재를 돌연 취소했다. 천주교·개신교·순복음교회를 찾은 일요일엔 개신교 장로인 김동길·김광일최고위원,성나자로마을 돕기회 회장인 봉두완전당대회의장 등과 함께 보도진에 오전 8시까지 동수원 톨케이트에 나와달라고 요청했다.
기자들이 따라가지 않아 사찰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수원에서 지켜본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순례중」 그가 무엇을 했을까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녀원을 찾은 정 후보는 수녀들에게 『하느님이 인도해 이곳에 왔다』며 「성령」과 「기도」를 얘기했다. 남부순복음교회에서는 그를 조용목목사가 『기도합시다』며 손을 잡자 고개숙여 기도했다.
정 후보는 수녀원 운영에 연료비를,양로원 운영에 쌀지원을 각각 약속했으며 별도로 기부금도 냈다.
신도 10만명의 초대형 교회인 순복음교회에서는 좁은 방에서 대기했다가 약 1분가량 목사와 만나 두둑한 헌금을 내고 돌아섰다.
승가사 등에서도 불자행세를 하면서 부처님에게 경배하고 두툼한 봉투를 불전에 시주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 후보는 이로써 불교·천주교·개신교라는 3대 종교에 단편적이나마 관심을 보였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아무 종교도 믿지않는 그가 종교에 관심을 갖는 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의 「순례」행위를 보고 「대권이 뭐길래…」라고 느끼는 사람은 비단 신도들 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정주영답지 않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정당대표로서 정강정책을 알리는 정상적 정당활동이 아님은 말할 나위없고,종교계의 환심을 그런 식으로라도 사겠다는 발상은 「사전 선거운동」의 범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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